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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건
최완규
아침 8시 40분. 은우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오는 시각. 약간의 오차를 무시한다면 그 시각은 대개 일정하다. 그때부터 여유롭지만 한가하지 않은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마음을 먹었다면 그 시간에 글을 쓴다든가 외국어 공부 같은 생산적인 일을 하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못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마음먹는 일’ 자체를 하지 않게 돼서다. 언젠가부터 의욕이라 불리는 마음 어딘가의 샘이 가문 논바닥같이 바짝 말라 버렸다.
처음엔 정말 며칠 정도만 쉴 생각이었다. 휴직을 하더라도 학교에 출근할 때처럼 규칙적으로 살겠다고 스스로 단단히 다짐했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하루 이틀의 쉼은 금세 일주일이 됐고, 그 허용치는 무더위에 엿가락 늘어지듯 쉽게 늘어나 한 달을 훌쩍 넘겨 버렸다. 늘어난 엿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내 생활은 휴직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이 돼버렸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난 나란 인간을 다시 보게 됐다. 단단한 줄로만 알았던 내 의지가 순두부마냥 흐물흐물해지는 걸 지켜본바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반성에서 오는 죄책감은 다른 사람한테 들킬 위험이 없어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대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는 가족에게 집중했다. 게으른 엄마,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생활하는 염치없는 여편네가 되지 않기 위해 은우 양육과 집안일에 신경 썼다.
오늘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TV를 켜 놓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밤사이 바닥에 가라앉은 먼지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을 부직포 걸레로 훔쳐낸다. 화장실과 집안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눈가에 잡힌 주름과 머리에 남은 머리털은 자기들만의 비율을 산정해 내 몸에서 총합을 유지하려는 것 같다. 아가씨 땐 풍성한 머리숱으로 남들한테 부러움까지 샀던 난데. 은우를 낳을 때 너무 힘을 썼는지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는 모근도 그때부터 기력을 잃기 시작했다.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줍고 주워도 내가 지나간 곳은 으레 머리털 몇 가닥이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이젠 거실이건 방이건 바닥 아무 데서나 둥글게 말린 채 떨어진, 흑갈색의 내 머리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눈가 주름은 한 획이 더해진다. 이젠 머리털부심 같은 건 옛날이야기처럼 거짓말이 돼 버린 지 오래고, 그저 남은 터럭이라도 사수하려고 안달이다. 아무리 덥더라도 머리를 묶는 분에 넘치는 수고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부직포 걸레에 달라붙지 않은 쓰레기는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물걸레질도 한다. 극세사 걸레를 빨아 침대와 협탁, 서랍장 위를 닦은 다음 걸레대에 끼워 마룻바닥을 문지른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는 금세 물기가 날아가면서 광을 낸다. 맨발로 그 위를 걸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눈으로만 봐선 그 차이를 알기 어렵다. 발바닥이 마루와 닿고 떨어질 때 느껴지는 감촉은 걸레질 전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걸을 때 발바닥에 아무것도 달라붙지 않아야 느낄 수 있는 매끄러움과 뽀드득함은 걸레질하기 전엔 모를 수밖에 없는 신세계다.
화장실 청소도 매일 해야 한다. 은우가 혼자서 세수해 보겠다던 날, 나는 은우 뒤에서 수건을 들고 참을 인을 새기며 지켜봤다. 아직 물이 닿지도 않은 얼굴 가장자리, 팔뚝으로 흘러내리는 비눗물, 제대로 걷지 않아 받아둔 물에 잠겼다 흘러내리는 비눗물을 흡수해 버리는 내복 소매. 그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땠을까. 은우를 지켜보느라 정작 내 표정은 볼 기회가 없었다. 들고 있던 수건을 건네고 은우가 수건으로 얼굴에 있는 물기를 닦아낼 때 나는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과장된 목소리로“우리 은우, 이제 다 컸네.” 칭찬도 해 줬다. 딸이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늘어가는 건 기뻤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세면대와 거울에 처참하게 남았다.
8살 아이한테 깔끔한 뒤처리까지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1학년 담임을 맡았던 5년 전이었다. 지금 은우 나이였을 아이들 25명과 1년을 생활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아이들한테 욕심을 부리면 나만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색칠하기, 가위질, 글씨 쓰기, 교과서 챙기기 같은, 어른이 볼 때 너무 하찮고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들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대단한 미션이다. 얼마 안 되는 인생에서 낯설고 어색한 일들을 수행하느라 그 인격체들 또한 인지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마른 수건 하나를 꺼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그 주변 물기를 닦아낸다. 욕조 턱에 남아 있는 물기는 물론, 하얀 실리콘 위에 옹송그리고 있는 물방울 하나까지 걸레로 훔쳐낸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흑임자 가루같이 거뭇거뭇한 점이 생겨 어느 순간 검정 띠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샴푸통이 가벼워졌다. 새로 사야 할 물품 목록에 샴푸를 추가한다.
청소를 끝내고 세탁기가 빨아준 옷들을 건조대에 넌다. 대부분 은우 옷이다. 크기는 작지만 어디서 묻혀 오는지 알 수 없는 얼룩과 식사 때마다 옷에 흘리는 게 많아 자주 빨게 된다. 다음 주에 남편이 돌아오면 아마 빨랫감을 또 왕창 던져주겠지. 오늘 아침에 인사도 없이 나갔으면서 돌아와서는 분명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게 뻔하다. 그이는 항상 그렇다.
이번 비행은 암스테르담이라고 했다. 신랑이 파일럿이라 좋겠다며 부러움인지 시샘인지를 대놓고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항공사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항공권 덕분에 해외여행은 남부럽지 않게 다닐 수 있어서 좋은 건 사실이다. 그것도 처음 몇 번이지 은우를 낳은 뒤로는 가족끼리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 그런 건 차치하고 남편은 나를 혼자 있게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게 때에 따라 단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될 때도 있다. 신혼 때는 미필적 고의로 버려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처럼 해외 비행으로 남편이 며칠씩 집을 비울 때면 이 남자랑 왜 결혼했는지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그러다가도 가끔 나도 내 일에 몰두할 필요가 있거나 아직 미혼인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면 남편 눈치를 보지 않아서 편했다. 편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내 시간을 즐길 때면 남편 없는 시간을 달콤하게 누렸으니까. 작년부터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시간은 배로 늘고 일이 없어지는 바람에 상황이 비대칭적으로 변해 버린 게 문제지만.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말이 없어졌다. 학교에 출근할 땐 성대결절이 올 정도로 말을 많이 했는데. 말수가 줄어든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원해서 한 휴직이었고 그래서 휴직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는 내가 다 떠안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이면서 그 안에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 처음엔 그저 여유나 무료함인 줄 알았다. 아가씨 때처럼 도서관이나 영화관, 전시회를 다니면서 시간의 자유를 만끽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의 취미 생활은 깎아 둔 사과처럼 금세 싱싱함을 잃었고, 그마저도 오후 1시면 딸을 데리러 가야 해서 시간이 묶여버렸다. 한낮 딱 중간에 낀, 은우를 마중 나가는 20분을 위해 다른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였다면 가장 바빴을 오전 4시간, 해 봐야 티도 안 나는, 반복되는 집안일로 채워졌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중간에 낀 시간은 나머지 여유로운 시간을 콕콕 찌르며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뭘 해 보려던 의지는 자연히 뭉개졌다.
몸을 움직이더라도 적적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건 소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소리. 내가 혼자 있음을 알리는 외로운 무음이었다. 소리가 없으니 외로웠다. 즐길 수 있는 고독이 아니라 쓸쓸하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을 지울 뭔가가 필요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대화하듯, 최소한 귀로 들을 수 있는 대화가 필요했다. 그때 딱 떠오른 것이 TV였다.
집안일을 하는 동안 의미 없는 소리라도 채우기 위해 난 TV를 켜 두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틀어놓진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는 중간부터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번 보게 되면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어이 처음부터 보고 마는 체질이라 아예 선택 사항에서 제외됐다. 처음은 뉴스였다. 그런데 처음 들을 때나 뉴스지 똑같은 사건, 사고 소식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하는 걸 듣고 있자니 고역이었다. 예능 채널로 넘어갔다. 흐름과 상관없이 중간에 채워지는 웃음과 효과음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다. 다만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광고가 긴 게 흠이었다.
다시 채널을 돌렸다. 그때 떡갈비를 팔고 있는 홈쇼핑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때 같으면 쳐다도 안 보고 넘겼을 화면이다. 왠지 그날은 화로 위에서 자글자글한 기름을 머금고 구워지는 떡갈비가 먹음직스러움을 넘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잠깐만 보고 넘기려 했는데 쇼호스트의 멘트에 나는 아예 리모컨과 넋을 내려놓으며 화면을 봤다.
― 보이시나요? 한 입 베어 물자 안에 있던 육즙이 넘쳐흐릅니다. 적당히 짭짤해서 아이들도 이거 하나면 밥 한 공기는 거뜬할 것 같아요.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요, 오늘부터 경찰이 밥도둑 용의자를 간장게장이 아니라 떡갈비라고 발표했답니다.
보고 있자니 주문을 안 할 수 없었다. 다시 리모컨을 쥐고 TV 화면 하단에 안내된 대로 파란 버튼을 눌러 주문했다. 주문 후에도 가족으로 분한 모델들이 식탁에 오손도손 모여 떡갈비 먹는 모습을 이어서 봤다. 저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은 적이 언제였지. 먹기 좋게 잘라주면 은우도 좋아할 거야. 나도 반찬 고민 줄어서 좋아. 배송이 오면 맛있게 먹어야지.
― 완판~! 완판입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에 더 좋은 상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못 살 뻔했네. 탁월한 선택이었어. 가족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때부터 집안일을 할 때마다 나는 홈쇼핑 채널을 틀어 놨다. 세상에 홈쇼핑 채널이 그렇게 많은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 채널, 케이블 채널 사이사이에 홈쇼핑 채널이 있었다. 어쩌면 일반 방송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파는 물건도 다양해서 질리지도 않았다. 계절 의류, 속옷, 도서, 가구, 건강식품, 전자제품, 여행 상품, 보석, 먹거리 등 보고 있으면 사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게다가 웬만한 방송보다 화질도 좋았다.
그렇다고 방송에 나온 물건을 무턱대고 산 건 아니다. 난 현명한 소비자니까.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방송을 보며 기다린다. 사고 싶은 물건이 나타나면 적절한 순간에 혜택 카드를 찾고 할인 쿠폰을 적용해서 물건을 주문한다.
나한테 쇼핑은 사냥이다. 사냥감을 찾아 방송 채널과 시간대를 미리 확인하고, 표적이 나타나면 주의 깊게 움직임을 주시한다. 크기, 색상, 가격, 편리함이나 활용도, 선 구매자들의 만족도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사냥감이 매력적이라면 놈이 달아나기 전에 미리 준비한 리모컨, 스마트폰, 카드 같은 사냥 도구를 이용해 낚아채야 한다. 망설이다 물량이 소진되면 그날 사냥은 허탕이다. 그런 날은 놓친 사냥감 생각에 아쉬움 가득한 한숨이 계속 나온다. 대신 사냥에 성공하면 그 자체만으로 즐겁다. 사냥감으로 뭘 해 먹든 걸치든 그건 나중 일이고 사냥 자체가 주는 만족감은 단순한 기쁨 이상이다. 그건 내가 저 물건을 가질 능력과 여유가 있음을 확인 시켜주고, 허전해진 마음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행위기 때문이다.
아닌 척했지만, 휴직 기간에는 밖에서 일할 때 느꼈던 성취감을 맛볼 수 없었다. 아무리 쓸고 닦고 광을 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본전치기인 집안일을 하면서 솔직히 나는 불안했다. 내가 이대로 현장에 복직한다면……. 쉬는 동안 업무 감각을 잃은 건 아닐까, 다시 예전처럼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다른 동료한테 뒤처지면 어쩌지, 그것보다 복직하면 은우는 어쩌지, 다시 못난 엄마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난 내가 만든 어둡고 축축한 불안 속에 날 가두고 있었다. 불안 같은 문제는 이성적으로 이해한다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가미처럼 옥죄어 오는 불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탈출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그도 아니면 그 못된 감정을 다른 것으로 덮어버리기 위해 난 홈쇼핑과 인터넷쇼핑에 빠져들었다.
쇼핑할 때 나는 마치 게임에 빠진 중학생 같았다. 그것은 내가 들인 노력이 즉각적인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과 비교해 보고 가격을 할인받아서 목표한 물건을 취하는 노력과 결과. 더불어 내 행위 자체가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즐겁고 흥분됐다. 그 점이 집 안에 틀어박혀 걸레질만 하고 있는 나를 살아있게 했다. 포획물은 하루나 이틀 뒤 누런 택배 상자에 담겨 집 앞에 배달됐고, 우리 집 베란다엔 그 누런 상자가 점점 쌓여갔다.
얼마 전 남편의 반바지를 홈쇼핑으로 샀을 때도 그랬다. 3가지 색상을 세트로 파는 상품이었는데 집에 있는 남편 바지로 치수를 확인하고 바로 주문했다. 카드 혜택을 받아 1만 원이나 저렴하게 샀다. 배송은 바로 다음 날 왔다. 마침 남편도 비행이 없는 날이어서 저녁 때 남편에게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제복을 입었을 땐 가려지지만 본래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이라 집에선 편한 옷을 선호했다. 냉감 있는 반바지를 입어 보더니 너무 좋다며 고마워했다. 저렴하게 샀고 남편이 좋아하는 보습을 보니 모처럼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은우도 내가 주문한 떡갈비를 먹고 급식보다 맛있다며 끼니를 연속으로 떡갈비만 먹겠다는 걸 달래느라 혼났다.
휴직하면서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일 중 하나가 하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였다. 아가씨 때 흘려들었던, 남의 새끼 키우느라 내 새끼는 딴전이었다는 선배 교사들의 넋두리가 귓가에 걸렸다. 커가는 은우를 보면서 나한테도 곧 닥칠 문제라는 걸 실감했고 선배들의 후회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은우가 학교에 들어가기 한 해 전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육아휴직은 초등 2학년까지 최대 3년이 가능했다. 그 기간만이라도 은우와 함께 등하교하고 곁에서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확보가 휴직의 본 목적이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하고도 시간이 남았다는 게 문제였다. 바쁜 교사 생활을 멈추고 얻은 시간의 여유는 서서히 내 마음에 구멍을 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저경력일 때부터 일 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게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나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옮기는 학교마다 보직교사를 맡아서 했다. 개중에는 나더러 전문직 시험을 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교육청 장학사들도 사업을 추진할 때 나를 팀원으로 끼우는 일이 많았다. 장학 자료 제작과 정책 연구 활동에도 여러 번 참여했으며, 그 일이 파생되어 여러 학교에 강의도 다녔다. 일하는 내 모습에 도취했고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만족스러웠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그런 만족감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소파에 엎드려 자고 있는 딸이 눈에 들어왔다. TV를 켜 둔 채 가엾게 잠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며칠 전 은우가 어린이집 친구를 부러워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윤이는 집에 매일 일찍 가. 서윤이네 엄마가 낮에 데리러 오거든.”
“서윤이네 엄마는 아마 일을 안 해서 그럴 거야. 엄마는 출근하잖아.”
“나도 알지. 그렇긴 한데…… 아니야.”
뭔가 말을 더하려다 뒷말을 삼켰다는 느낌이었다.
“뭔데? 은우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돼. 말 안 하면 엄마가 모르잖아.”
은우가 마지못해 꺼낸 말은 친구들은 집에 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어리지만 속 깊은 딸이다. 자기보다 엄마 처지를 먼저 생각해서 놀이터에 가자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바빠서 해 주지 못할 거란 걸 이미 알았을 테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딸을 기르는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아이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명 같겠지만 나도 노력했다. 퇴근 전에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최대한 일에 집중했고, 퇴근 종이 치면 바로 차를 몰아 어린이집으로 갔다. 그렇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아이들 대부분이 하원을 한 뒤였고, 우리 딸과 한두 명의 아이가 심드렁하게 블록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은우를 차에 태우고 바로 집으로 가서 씻기고 저녁을 먹였다. 그 이후는 은우를 놀게 하고 나는 나대로 학교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자는 은우를 본 그날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시간이 지나서 은우나 나한테 가장 후회되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뭘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 끝에, 은우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주지 못한 일일 거란 결론을 얻었다. 그것도 밤잠 안 자가며 한 일이란 게,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의 새끼 키우느라 학교 일에 매달린 거라면 더더욱 후회스러울 것 같았다. 물론 능력 있는 교사, 일 잘하는 교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어깨를 으쓱하며 만족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딸과 함께 있어 주는 엄마와 커리어 우먼을 둘 다 수행하기란 물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선이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해 보고 내린 결정이 육아휴직이었다. 은우가 3학년이 되면 어느 정도 컸을 테니 그땐 나도 학교로 복귀해 다시 일을 시작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계획한 3년 중 허리를 지나고 있다.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은우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엄마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놀이터나 유치원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는 했지만, 엄마들과 무리 지어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교사인 내가 알 수 없는 학부모들의 세계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리가 있듯 학부모들끼리도 무리를 형성했고, 거기서 학급 여론이 형성됐다. 무엇보다도 육아에 대한 품앗이가 이루어졌다. 흔히 아이들이 친한 친구 엄마를 누구 ‘이모’라고 부르는 관계.
은우가 1학년이 되자 내 바람대로 은우와 등하교를 함께 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 학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교 땐 교문 앞에서 은우를 기다렸다. 처음엔 혼자서 은우를 기다렸다. 한두 달이 지나고 은우가 반 친구를 사귀면서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헤어질 때, 나랑 같이 기다리던 엄마들과 간단히 수인사 정도는 하며 안면을 트고 지냈다.
어느 사회든 다른 사람한테 살갑게 말을 걸고 아무렇지 않게 친한 척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줌마 사회에선 그 기능에 특화된 사람이 눈에 띄게 자주 존재한다. 그저께는 날 알아본 한 엄마가 나한테 와서 아는 척을 했다.
“은우 엄마죠? 은우랑 같은 반 승현이 엄마예요. 저기 은우랑 같은 반 엄마들 있는데 서로 인사하고 지내요.”
교사로 학부모를 만날 때와 엄마로서 다른 엄마들을 만날 때는 달랐다. 부담감도 없고 격식도 크게 차릴 필요가 없다. 승현 엄마의 서글서글한 인상과 우아한 목소리는 이미 날 그쪽으로 이끌었다. 각자 떨어져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네 명이 한 무리다. 어색하게 누구 엄마예요, 하면서 서로 인사 겸 자기소개를 대신했다. 은우한테 학교 얘기를 들으면서 한 번쯤 들어 본 이름들이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그날은 그렇게 아이들 이름으로 통성명만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은우에게 아까 인사한 엄마들의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20년 가까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칙 중 하나가 아이의 언행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은우는 그 애들 모두 재미있고 자기랑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아직 1학년밖에 안 된 아이라 아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면 누구를 판단할 표현력이 부족하겠지. 아무튼 은우가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니 살짝 마음이 놓였다.
어제도 은우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전날 인사를 나눈 멤버들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교문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난 그늘진 자리, 거기가 그들의 영역인 듯했다. 어제는 내가 먼저 가서 인사했다. 다행히 모두들 반가운 척을 해 줘서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어제는 서로의 나이도 알게 됐다. 나는 여기서 딱 중간이었다. 서른일곱에 은우를 낳아 나 나름대로 늦은 출산이라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다. 현지네는 현지와 8살, 10살 터울인 언니 오빠가 있어 나랑 딱 10살 차이가 났다. 인상 좋아 보이던 승현 엄마는 마흔에 첫 아이를 봤다고 했다. 지성이 엄마는 나랑 한 살 차이였는데도 나이를 안 순간부터 말끝마다 ‘언니’를 꼭 붙였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자란 것처럼 키가 큰 준우 엄마는 말뿐 아니라 표정도 없었다. 나보다 세 살이나 아랜데도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좀처럼 사근사근하게 구는 것 없이 뻣뻣했다.
대뜸 반말로 물음인지 아쉬움인지 현지 엄마가 말을 꺼냈다.
“은우 엄마는 원래 놀았어? 그랬으면 우리랑 좀 더 일찍 만나도 좋았을걸. 젊은 사람 하나 더 있으면 덜 심심하고 좋았잖아.”
여기서 나도 젊은 축에 속하는구나. 그것보다 이런 대화가 어색했다. 교사 대 학부모로 만났다면, 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엄마들이 나한테 말을 놓는 상황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는데. 생경한 상황에 압도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원래 초등교사인데 육아휴직을 해서 내년까지 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 예, 직장 다니다가 지금 잠깐 휴직 중이에요.”
“남편은 뭐 하는데? 휴직하면 벌이가 아쉬운 거 아냐?
이번엔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될 법했다.
“비행기 조종사예요.”
“아따, 이 집도네. 준우야, 이 집 아저씨도 비행기 몬단다. 애도 하나만 있고 둘이 비슷한 게 많네.”
현지 엄마가 준우 엄마를 억지로 끌고 와 내 옆에 세웠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남편 직업이 같고 애가 하나라는 극히 저렴한 이유로 친하게 지내라니. 억지로 떠밀린 상황이 불편했다. 가뜩이나 여기 넷 중에서 준우 엄마한테는 유독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냥 멋쩍게 웃으며 상황을 모면했다. 전날보다는 친해진 것 같지만 내 신상만 털린 불편한 대화였다고 생각하던 중 은우가 나왔다. 은우 가방을 들어준 다음 함께 있던 엄마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교문 안쪽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나영 선생, 맞지? 어머, 나영 씨.”
돌아보니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학년 부장님이었다. 4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교사들은 예전 동료를 어디서 만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집 근처, 은우 학교에서 만나다니 반갑고 신기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세상 참 좁다며 이렇게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는 도중 나는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걸 느꼈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살짝 돌려봤다. 조금 전까지 함께 대화를 나눴던 엄마들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사육 상자에 들어 있던 배추흰나비나 장수풍뎅이가 자기를 보고 있는 인간을 봤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 나는 그녀들한테 관찰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휴직했다는 얘긴 들었어. 그냥 집에만 있기 아까운 사람인데. 예전처럼 글이라도 쓰지, 그래?”
지금은 은우 학교 교감인 선배는 예전부터 날 좋게 봐주었던 분이다. 나한테 좋은 재주 썩히지 말라는 덕담과 함께 은우한테 인사를 하고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다시 집으로 향할 때 슬쩍 보니 그녀들도 그제야 아이들을 챙겨서 각자의 목적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기분이었다. 더듬어 찾다 알게 됐다. 기분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걸. 기분이라면 어느 쪽으로든 좋고 나쁨의 축으로 바로 기울기 마련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연극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연극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배우는 관객이 자기 대사나 행동, 표정을 주목해 주길 바랄 것이다. 교사가 하는 일도 그런 면에서 배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실을 무대로 수업이라는 공연을 올린다. 대본 대신 수업지도안을 짜고, 소품으로 사용할 교재와 교구를 마련한다. 관객은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학부모나 동료 교사 혹은 교장, 교감을 초대하기도 한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한 장면의 주체가 되는 경험. 조금 전 옛 동료와의 짧은 만남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난 배우였고, 은우랑 같은 반 엄마들은 관객이었다. 휴직 기간 내내 난 주변인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 그들이 날 주목하는 상황에서 희열 비슷한 흥분을 느꼈다.
집에 도착해 보니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크기로 보아 며칠 전 홈쇼핑으로 주문한 에어프라이어 같았다. 아니면 은우 방에 놓아줄 소형 선풍기일 수도 있고. 내가 주문해 놓고도 뭔지 잘 모르겠다. 주문한 게 한두 개도 아니고. 아무튼 그 안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황갈색 택배 상자는 언제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조금 전 격앙된 감정이 더해져 콧노래를 부르며 상자를 집안으로 들였다. 택배 상자를 신발장 앞에 두고 은우를 챙겼다. 은우에게 방울토마토를 씻어 접시에 담아 주고, 책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내 특별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한 뒤 물통을 꺼내 씻었다. 휴대전화로 남편이 일찍 퇴근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모처럼 저녁 식사를 조금 서둘러 준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움직이는 내내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또 샀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 입에서 나온 말은 딱 그 세 음절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은 한숨이 오후 내내 좋았던 내 기분과 집안 공기를 바꿔 놓았다. 말도 아닌 그 숨소리엔 나를 한심하고, 무절제하며, 돈도 안 버는 주제에 내가 벌어온 돈으로 물건만 사대는 여편네라고 깔보는, 응축된 비난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남편이 물건 사는 일로 나무란 건 처음은 아니다. 내가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면 가끔 좋아해 준 적도 있지만, 물건을 너무 자주 사는 게 아니냐며 걱정에 핀잔이 잔뜩 섞인 불만을 최근 들어 자주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난 어쩔 땐 논리적으로, 또 어쩔 땐 애교를 부려가며 넘어갔고 남편도 더 따지고 들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낮에 있었던 일로 내 기분은 살짝 들떠 있었다. 남편이 오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를 보고 한숨만 내쉬는 남편이 서운했다. 애써 자기 좋아하는 바지락 된장찌갤 끓여 놨더니 하는 소리라니……. 그냥 들어와도 됐잖아!
“필요해서 샀어! 필요해서!”
나도 목소리에 칼을 세웠다. 남편도 오늘은 지지 않았다.
“우리가 혼수 장만하냐? 필요한 게 왜 이렇게 많아? 베란다 좀 봐! 저게 필요해서 산 건지, 쟁여 둔 건지.”
“갑자기 왜 그래? 내가 에어프라이어 산 게 뭐 대단히 잘못한 일이야?”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야? 내가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닌데. 낮에 해나 들어오겠냐? 아주 택배 상자들로 벽을 만들겠어!”
그때 은우가 방에서 나와 나한테 안기면서 대화는 중단됐다. 말없이 저녁을 먹었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남편이 갑자기 캐리어에 짐을 싼 거다. 내가 알기론 이번 주엔 비행이 없었다. 남편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상황을 설명했다. 암스테르담행 비행에 구멍이 생겨 대신 가게 됐다고.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과 지금 표정만 봐도 알겠다. 비행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연락받은 건 아닐 것이다. 남편이 그런 상황을 찾아냈거나 후배를 압박해 그런 상황을 만들었겠지. 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었냐. 그렇다고 그렇게 나가는 건 아니잖아. 쫌생이같이.
집에는 다음 주에나 올 거라며 잠도 안 깬 은우한테만 인사를 하고 아침도 거른 채 나갔다. 쳇! 내가 휴직만 안 했어도 이런 대접은 안 받았을 텐데.
집에 있는 반찬으로 점심을 간단히 차려 먹고 은우 마중을 갔다. 교문 근처에 다다랐을 때 현지 엄마가 둥그런 몸을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그러고는 대뜸 내 팔을 붙잡더니 나를 무리로 이끌었다.
“저기…… 은우 엄마. 우리가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자기 선생님이었어?”
결국 그거였나.
“아…… 네. 휴직 중이라고 어제 말씀드렸죠.”
“그랬구나, 우린 그냥 일반 직장 다니다 쉬는 줄 알았지. 어제 보니 교감 선생님하고도 친한 것 같던데.”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서요.”
마치 범죄 용의자로 몰려 형사한테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지, 어제의 관심과는 결이 달랐다.
“그런데 혹시 무슨 글도 써?”
그때 내가 왜 갑자기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겠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신규 교사 시절 지방지 신춘문예에 글을 올렸다가 본선까지 오른 적이 있다. 당선도 아니었는데, 어제 만난 교감 선생님이 기억하고 꺼낸 말을 들었나 보다. 그런데 대답을 기다리는 엄마들의 눈빛이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전에 신춘문예에…….”
말끝을 흐리자 내가 꺼내지 않은 말을 자기들끼리 알아서 채우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바람에 나는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다.
“아이고, 선생님이면서 작가님이었네, 작가님.”
“은우 엄마, 능력 있는 사람이었네요. 애 키우느라 어쩔 수 없이 휴직했구나.”
“언니랑 친하게 지내야겠다. 내 주변에 작가가 다 있고. 호호호”
엄마들이 한마디씩 하는 동안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귀는 빨갛게 달아올랐을 거다. 이마와 귀 앞쪽에 땀이 맺혔다. 은우가 빨리 나오길 바랐다. 승현 엄마가 예의 우아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혹시 부담되지 않는다면 오늘 은우네 집에 좀 방문해도 될까요? 서로 친해지기도 했고, 작가님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해서요. 많이 부담된다면 거절해도 좋구요.”
이미 자기들끼리는 얘기가 된 것 같았다. 거절해도 괜찮다는 말이 주는 거절할 수 없는 위력은 대단했다. 특히나 저렇게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예의를 갖추고 하는 말에선 더더욱.
결국 우리 집에 처음으로 8명이나 되는 손님을 들였다. 아이들은 은우 방으로 들어갔고 어른들은 집 곳곳을 구경했다. 같은 단지 아파트라 구조가 거기서 거기일 텐데 구석구석 꼼꼼히들 살폈다. 마치 이사할 집을 찾는 사람들처럼. 그나마 매일 오전에 청소해 둬서 누가 오든 부끄럽진 않아 다행이었다.
“집이 너무 깔끔해요, 언니. 작가님 집은 이렇구나!” 듣는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지성 엄마였다.
“은우 엄마, 작업은 어디서 해? 작가님 작업실을 구경해야지.”
있지도 않은 ‘작업실’을 찾는 현지 엄마의 말에 뜨끔했다. 그렇지만 긴장한 표정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나는 오른손으로 작은 방을 가리켰다. 책상과 책장, 노트북이 있어서 서재처럼 쓰는 곳이긴 하지만, 학교 일을 한 적은 있어도 여기서 글을 쓴 적은 없다. 게다가 요즘은 나 대신 남편이 주로 사용했고 남편의 제복도 거기에 걸려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날 작가로 대하는 그들의 장단에 맞추기 위해, 그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비록 거짓이더라도 내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들을 속이기 위해 상황을 설계하거나 작전을 짜는 등의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현지 엄마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작은 방을 가리킨 오른손이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려면 그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때 줄곧 말없이 무리를 따라다니던 준우 엄마가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대상도 모호했다. 혼잣말 같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한테 하는 말 같으면서도 또 나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작가고 선생님이라서 뭔가 다를 줄 알았더니 똑같네요. 택배 상자 쌓여 있는 것도 비슷하고. 전 다른 일 있어서 먼저 가요.”
현관문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현지 엄마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누구한테 비밀로 하고 싶은 건지 모를, 다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시늉만 하며 말했다.
“자기 남편 제복 보고 저러는가 봐. 준우 엄마가 예전에 승무원이었거든. 자기도 봐서 알겠지만 키 크고 예쁘게 생겼잖아. 준우 아빠도 거기서 만났는데 거긴 저가 항공사거든. 원래 저이가 남한테 열등감 같은 게 좀 있어. 우리랑 지내면서도 남 칭찬하거나 자랑하는 거 들으면 지지 않고 자기 얘기를 꼭 한마디씩 해야 하는 사람이야. 그걸 우리가 맞춰줬단 말이지. 그런데 자기 나타나고 속으로 꿀린다 생각하니까 심술이 뻗쳤나 봐. 자기는 휴직이니까 나중에 학교도 나가고 글도 쓸 수 있는데, 준우네는 그래도 예쁘게 꾸미고 비행기 타던 사람이 계속 아줌마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 아니야. 게다가 자기 남편 다니는 항공사는 국적기라 남편끼리도 비교됐을 거고……. 사람이 왜 그렇게 남하고 비교하고 드는지.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자기가 이해 좀 해. 나쁜 사람은 아니야.”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조용해진 집안에서 준우 엄마를 생각했다. 알고 지내는 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우리 집을 잠깐 훑고서 뱉은 말의 잔상은 오래 갔다. 거기에 현지 엄마의 해석이 더해져서 그녀가 우리 집에 내려놓고 간 말이 귓가에 계속 어른거렸다.
‘다를 줄 알았더니 똑같네요.’
그녀는 나와 우리 집에서 뭘 본 것일까?
학교에서 만난 아이 중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항상 남과 자기를 비교했다. 그녀는 단순히 우리 집을 구경한 게 아니라 뭔가 확인하고 비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기 패는 감춘 채 상대의 패를 열어보고 싶어 하는 저열한 도박꾼처럼. 그리곤 내가 자기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조금 불쌍했다. 남들은 신경조차 안 쓰는 자기 세계를 꾸준히 남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는 무척이나 피곤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고 그녀는 무척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그녀보다 나을 게 없는 보통의 가정주부라는 점을 확인하고서.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휴대전화로 단체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제 만난 교감 선생님이 보낸 것이다. 내일 저녁 예전에 같은 학년을 했던 교사끼리 오랜만에 모여 함께 식사하자는 내용이었다. 남편도 집에 없고 잘됐다 싶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끼리만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더 끈끈하다는 느낌이 든다. 배타적인 공감대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회신을 보내기 전에 가장 친절한 지성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저녁에 은우 좀 봐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괜찮다 한다. 은우를 맡기면서 빵이나 과일 좀 사다 줘야지.
모처럼 약속을 잡고 외출하려니 신경이 쓰인다. 집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출근 때 입었던 옷들이 어색했다. 얼마 전 홈쇼핑에서 산 여름 원피스가 그나마 제일 나았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리, 아줌마 같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안 하던 귀걸이와 목걸이도 했다.
약속 장소는 번화가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는데 집에서 쉬는 주제에 약속 장소엔 내가 제일 늦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5명이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다들 환하게 맞아줬다. 다른 이들도 동학년 이후에 이렇게 따로 만나긴 처음이라고 했다. 현직에 있지만 각자 일이 바빠서 교육청 단위 연수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업무용 메신저로 짧게나마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라고 했다. 나만 소외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안심해도 될 듯했다. 휴직하는 바람에 아예 내 소식만 모르고 지냈다며 아이는 잘 크는지, 휴직한 기분은 어떤지, 예전처럼 글도 쓰는지 등 딱히 궁금해서가 아닌, 예의상 건네는 안부를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처럼 한 사람씩 물어왔다. 그에 대해 나도 대단한 격변 같은 걸 겪은 바 없어서 그냥 편하게 지내고 있다 대답하고 말았다.
식사가 나오고 음식을 뜨면서부터는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나에 대한 안부는 애피타이저였다. 포크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뜨면서 각자 학교에서 일어나는 업무나 교육 정책, 문제 학생과 수시로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에 관한 이야기가 테이블에 올랐다. 기초학력보장제, 다문화교육, 공모제교장, 혁신학교, 학교폭력 학생과 진상 학부모 등 몇 시간을 얘기해도 끝나지 않을 얘기들이 이어졌다. 거기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현장에서 1년 반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체감이 안 됐다. 예전 같으면 내가 먼저 나서기도 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정책에 대한 설명이나 방법 등을 물었을 거다. 나 또한 그런 대화에서 여러 사람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는, 그 상황을 즐겼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좀처럼 입을 뗄 수 없었고, 누구도 내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포만감이 아니라 소외감 때문에 식욕이 사라졌다. 뭘 기대하고 여기에 왔던 걸까?
2시간 동안 남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고 적당히 웃어주느라 피곤했다. 다음에 또 보자는 상투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 가슴에도 발자국만큼 구멍이 뚫렸다. 마음이 빈 지하실처럼 허하게 울렸다.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집에서 청소하고 애 보고 남편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낸다 생각하니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처럼 남들 앞에서 돋보이고 싶었다. 다음 학기라도 휴직을 철회하고 학교로 복귀할까? 그럼 은우는 어쩌지?
지하철 스크린 도어 전광판에서 나오는 샴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 올 한 올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자랑하는 모델이 슬로비디오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자 아래로 흐드러지게 내린 머리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생동감 있게 빛을 반사한다.
집에 가면 어제 쇼핑 목록에 적어 둔 샴푸를 사야겠다. 카드 할인을 받으면 아마 더 싸게 살 수 있을 거야. 샴푸 방송이 언제였더라. 인터넷 쇼핑몰이랑 비교해 보고 더 싼 데서 사야지. 물건을 사기 전이라 살짝 흥분되기까지 한다. 조금 전까지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상황은 잊었다. 나는 지금 사냥에 나설 채비를 하는 사냥꾼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는 건 물건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면서 나는 내 자존감과 함께, 우울함 속에서 내 삶을 건져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준우 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며 나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녀와 비슷한 걸까. 그녀도 쇼핑을 통해 자존감을 건져 올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자존감이란 게 그렇게 쇼핑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나.
경쾌한 음악과 함께 지하철이 들어온다. 내 머리칼도 바람에 휘날린다. 그 바람에 방금까지 머릿속을 휘젓던 의미 없는 질문이 사라졌다.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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