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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번호 032.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받아보면 녹음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인천광역시장후보~” 뚝.

평소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던 전화가 평균 2시간마다 울린다.

어떻게 알았는지 선거철만 되면 내 전화기가 원래 자기 역할을 해 내느라 바쁘다.

나만 그런 것 같지 않다. 우리 와이프도 마찬가진다.

내 전화번호는 도대체 어떻게 알고 보내는 거야?

거리마다 붙어있는 현수막에서 본 게 전부인 사람들이 깍듯이 인사하면서 자기를 뽑아달란다.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귀찮게 하면 뽑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선거 열흘을 앞두고 공모물이 왔다. 평소 나한테 전화를 하던 이들이 누군지 한번 살펴보려고 봉투를 열었다. 빳빳한 용지에 칼라로 사진과 글자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딸이 학교에서 받아오는 가정통신문은 누런 갱지에 손에 묻어나는 잉크로 인쇄돼 있던데. 사실 담긴 정보로 보자면 둘 다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니 효율성면에선 학교가 좀 낫다.

종이가 많기도 하다.

정당마다 내 놓은 시의원 비례대표, 시장 후보, 시의원 후보, 구청장 후보, 구의원 비례대표, 구의원 후보, 교육감 후보 거기다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시험범위 체크하듯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기도 어렵다.

그럼 어디 시험공부하듯 한 번 볼까?

구의원부터. 이 사람은 지난 번에 당선된 사람이네. 4년마다 현수막에서 만나는 얼굴이다. 얼마 전 새로 생긴 우리 동네 지하철역 개통을 자기가 했다고? 좋은 일 했구만. 우리 딸 다니는 학교에 체육관도 지었다고? 그런 건 학교랑 교육청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하긴 예산이 쓰이는 거니까 정치인 입김이 조금 들어가긴 하겠지. 이야, 다른 건 그냥 그렇고 그런데, 요 앞 군부대 나가고 생긴 공터에 복합 쇼핑센터를 유치하겠다네? 추진력 있어. 좋아, 이 사람으로.

다음 후보는⋯⋯ 뉴 스페이스네.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단체에서 사무총장, 대표, 위원 같은 걸 했다네. 어디서 뭘 했던 사람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패스. 공약은⋯⋯ 뭐야? 앞 사람하고 차이가 없잖아. 공터에 복합 쇼핑센터 유지, 마을단위 공동체 구성, 사회적 약자 배려를 위한 센터 건립.

둘이 똑같은데 왜 당이 다른 거야?

다음은 비례대표 선거를 위한 정당 공보물을 볼까? 어라? 이것도 아까 구의원 공보물이랑 차이가 별로 없잖아. 당이 서로 다른데 지하철 역 개통, 학교 체육관 건립을 서로 자기들이 했다 하고, 복합 쇼핑센터 유치 공약도 같네. 서로 공약을 공유하나?

TV에서 보면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악에 받쳐 소리지리고, 니가 잘못했네, 내가 잘했네 하더니 왜 공약이 같은 거야? 아, 내로남불이라고 계속 그러더니 서로 같은 일을 다르게 보는 거였구나. 아임 쏘리. 몰라 봤네.

다음은 구청장을 볼까? 구성된 페이지가 더 많은데, 첫 장을 들춰보니 안 봐도 되겠다. 아까하고 똑같다.

시의원, 시장도 마찬가지다. 다들 우리 동네 신축 역사는 서로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글자를 박아놨다.

작년 공사할 때 보니 작업복 입고 다니던 사람은 동남아시아 외국인이던데. 도대체 무슨 일을 했다는 거야?

일단 만들어진 건 다 자기가 했다고 우기면 그만인가?

정치란 게 그런거구나. 오호. 교통신호 지키는 것보다 쉽잖아.

일단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만들어지고 나선 ‘내가 했어’라고 하면 그만이고, 만들어 놓고 불편하거나 문제 있으면 ‘기존 정권이 잘못 했네’하면 되는 거였어.

시장, 시의원 공보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옆 동네까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다고 우긴다.

몇 년 후에 치를 국회의원 선거라고 다를까?

시험 문제가 잘못됐다.

출제에 오류가 있어.

다른 문제로 대체하기가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객관식처럼 답을 찍어본다. 답이 없는 줄 알면서도⋯

출제자는 스스로 정답이라고 생각할까?

이러니 시험 자체를 거부하고 응시를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거다. 씁쓸하구만.

또 전화가 온다. 지역번호 032.

방금 받았는데 설마?

“안녕하십니까? 경기도교육감 후보~” 우리집은 인천인데 지역번호가 같다고 옆 동네 교육감 후보까지 전화를 하네?

짜증나. 알아서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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