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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큰 마음을 먹고,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함과 더불어 내 자신을 계속 의심하면서 1년짜리 휴직을 신청했다. 
휴직으로 얻은 것은 시간의 자유와 업무로부터의 해방,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 그리고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장편소설이다. 대신 그 대가로 매달 통장에 찍히던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 했다. 일을 하는 동안은 월급이란 게 흔히 하는 말 그대로 쥐꼬리, 쥐뿔 더 막나가 개뿔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어지니 내가 월급을 참 많이 의지했었구나, 라는 반성 아닌 반성이 들었다. 

휴직 동안 어쩌다 함께 근무했던 분들을 만나면 그들은 나에게 으레 이렇게 안부를 물어왔다. 
"잘 쉬고 있죠? 잘 누려요."
그들이 묻는 안부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 예의상 던진 질문이듯 내 대답 또한 간단히 "네, 너무 좋아요."였다.

나는 정말 잘 쉬었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을까?
그런데 너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질문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쉬려고 휴직을 한 게 아니었으니까.
꿈이 있었고,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잠깐만이라도 직장 생활에 Pause 버튼을 누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멀티플레이어와는 저 멀리 떨어진 캐릭터였기 때문에.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나 나름대로의 루틴을 만들어 하루를 보냈다. 가족들이 출근하는 동안 오전엔 가방을 꾸려서 가까운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읽고, 또 고치고를 반복했다. 날이 좋은 오후에는 운동과 담 쌓고 살던 생에 등산을 취미로 하거나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이렇게 보낸 1년을 되돌아보니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했고, 내 시간을 투여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산출물을 얻어서 여전히 내가 갖고 있으니 말이다. 
결과로 말하자면, 내가 쓴 소설들은 응모한 곳마다 수준 미달 취급을 받았다. 딱 한 곳만 본선에 올라 심사위원의 코멘트를 받았을 뿐이다. 소설이란 걸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었고, 내가 좋아서 읽은 소설들을 보면서 나도 써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 휴직까지 이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한 번의 실패로 다음에 이어질 도전의 싹을 스스로 베어 버렸다. 나한텐 그만한 재능과 능력이 없나 보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라며 실패에 대한 부끄러움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돌렸다. 마치 여우가 먹지 못하는 포도를 두고 시다고 말하는 것처럼. 용기도 없었고, 끈기도 없었다. 그저 잠깐의 도전으로 쉽게 주어지는 결과에 만족하며 자아도취에 빠진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밖에 성장하지 못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 갖게 된 꿈을 좇다 보니 단기간의 노력으로 평가된 결과와 실패에 조금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올해만 하고 접을 일이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키보드를 치지 못하는 날까지, 펜을 들지 못하는 날까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휴직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투여한 시간 대비 정직하게 산출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직장이 아니었다. 
월급 루팡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장에 있는 동안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일을 하더라도, 월급이란 게 나온다. 
글을 쓰면서 알았다.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머리로 생각하고, 키보드로 글을 써야만 뭔가 얻을 수 있다. 병가, 연가, 조퇴, 지참, 외출 하나도 인정 되지 않는 것이 글쓰기였다. 직접 쓰지 않더라도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시간까지 글쓰는 시간에 투여해야만 뭔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직장이란 곳이 참 혜자로운 곳이라는 것을.

최근에는 예전에 읽어서 좋았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 <씽크 어게인>, 김영하 단편집,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샹커 베단텀, 빌 메슬러의 <착각의 쓸모> 등.
그 중에 <오리지널스>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 더이상 휴직을 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일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독창적인 일을 하는 방법을.
예전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의 안정을 위해 현업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내용을 책에서 발견했다. 책 속에 나오는 '와비파커' 창업자들처럼.

그러기 위해서 올해는 꾸준히 운동을 해 볼 생각이다.(과연 얼마나 끈기있게 할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통해 체력을 확보하고, 그 체력으로 일도 하면서 글도 써나갈 생각이다. 그게 2023년 내 도전이다. 
그렇게 중간중간 글을 쓰고 몇몇 공모전에도 내보내고 하면서 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노력하겠다. 
꿈의 기한을 따로 정하진 않을 생각이다.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노력 노를 젓다 보면 언젠가 거기에 도착하게 돼 있다. 그러기 위해선 도착지까지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중간중간 거친 풍파와 튀어나온 암초를 만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부숴진 나무판자에 의지해서라도 물에 뜰 수만 있다면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휴직을 마치고 다시 17년 간 몸담았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미 복직서와 2023년도 업무 희망서까지 제출했으니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마음을 크게 먹고 도전하도록 하자! 
실패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마추어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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