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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

서울, 온누리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달 동안 교생 실습을 나왔다. 학생일 때 학교에 다닌 것과 교생으로 학교에 출근하는 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학생 때 학교가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 공간이었다면, 교생에게 학교는 시험지 없는 한 달짜리 시험장이다. 수업 운영, 학생 관리, 담임 보조까지 학교에서 내가 하는 모든 언행이 평가 대상이 된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모든 순간이 평가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어항 속 금붕어처럼 답답할 것 같아서 아예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힘들었던 건 평가 때문이 아니다. 교생이라는 낀 위치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정체성 혼란 때문이었다. 난 교사의 탈을 쓴 학생이었고, 그래서 교사의 업무는 있되 권한과 책임은 없는 상태였다. 뭘 하더라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됐고 드러나지 않는 숨은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학생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수업, 질의응답, 급식 지도, 상담 활동을 포함한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좀처럼 쉬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학생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뭘 하든 간에 애매한 건 일일이 지도 교사에게 물어봐 가며 해야 했다. 그렇게 조심성 있게 지내면서도 잘못한 학생을 야단칠 수는 없었다. 학생을 질책하는 건 철저히 담임교사의 몫이었다. 그저 난 학생 때처럼 담임교사에게 학생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렇다고 교생으로 있는 동안 친구같이 재미있는 선생님이 되겠다며 학생들에게 말을 가볍게 한다거나 농담을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야단을 치든 농담을 하든 교생의 행실이 이상하다는 민원은 통제 없이 바로 교무실로 들어갔고, 그런 민원 전화가 온 다음 날이면 나를 포함한 교생들은 교감한테 불려 가 한소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출근하는 동안 바짝 조여진 정신적 긴장 상태는 퇴근길에 맥없이 풀어져 집에 오는 길이면 난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병든 병아리가 돼 버렸다. 버스로 집에 오는 30분 동안 매일 버스 창에 고개를 부딪치며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졸다가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도로 두 정거장을 걸어 온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난 교사가 될 마음도, 준비도 모두 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박 선생하고 부를 때마다 하고 자동 반응하지만, 돌아서면 도대체 난 여기서 뭐 하는 거지?’하고 정체성을 의심하며 현재를 받아들이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생 실습의 효과와 목적에 혼란스러운 정체성 극복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교생을 나가는 동안 이거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나마 그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를 지도해 준 실습 담임 도지수 선생님 덕분이다. 그녀는 나보다 7살이 많았고, 특징이라기엔 뭣하지만, 6~7월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격식을 갖추려는 것처럼 매일 긴팔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녀를 형식에 얽매이고 꽉 막힌,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첫인상을 매겨버렸다. 하지만 겪어 보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한참 모자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밝고 친절한 모습이 몸에 밴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기품이 있었다.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었던 학생들은 그녀와 대화한 뒤엔 표정을 풀고 해맑은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 학생들은 물론 교생인 나한테도 그런 태도는 한결같았다. 만약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날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뒤, 차를 한 잔 끓여 와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처음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결정적으로 내가 선생님을 완전히 의지하게 된 건 학교 화재 대피 훈련 때 있었던 일 때문이다. 예정대로 비상벨이 울렸고,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지수 선생님은 학교 화재 대피 훈련을 담당하는 생활안전 부장이라서 그날은 내가 우리 반 학생을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교생 연수 뒤, 교감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더니 대화 좀 하자고 했다. 실내화를 신긴 채 학생들을 운동장에 데리고 나갔다는 게 이유였다. 불이 나면 신속하게 대피해야지, 운동화로 갈아 신을 시간이 없겠다 싶어 판단한 결과였다. 하지만 교감의 생각은 달랐다.

박 선생, 훈련 아닙니까? 훈련! 진짜로 불이 났다면 당연히 맨발로라도 나가야지, 그걸 누가 몰라요? 그런데 훈련이란 걸 뻔히 아는 마당에, 천 명 넘는 애들이 흙 묻은 실내화로 운동장과 교실을 드나든다 생각해 봐요. 그 흙먼지가 어떻게 되겠어? 애들한테도 안 좋아요. 좀 교육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지.”

물러서지 않고 나도 내 생각을 피력했다.

교감 선생님, 대피 훈련은 실전처럼 연습해서 행동을 학생들 몸에 익히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내 말에 교감은 짧게 숨을 내뱉고는 답답하다는 듯 내게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던졌다.

거 참, 박 선생님, 융통성 없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면 복도랑 교실에 있는 흙먼지는 누가 청소할 건데? 박 선생이 다 할 건가? 몇 주 전부터 공지한 훈련, 지각 있는 선생이면 알아서 준비했겠지, 애들하고 똑같이 행동하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반은 다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온 거 못 봤나? 진짜 그렇게 해서 나중에 교사 생활 잘할 수 있겠어?”

모멸감을 느꼈다. 교육적으로 생각하라는 말 다음에 나온,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언사에 자존심이 상했다. 특히 애들하고 똑같이 행동하면 어쩌자는 거야!’라는 말은 혼잣말처럼 했지만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고 비교육적인 사람이었나? 이 바닥에 교육적이라는 명분으로 자기 선택과 언행을 정당화시키는 무리가 있다더니 그중 한 명이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됐다.

그때 도지수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서류 결재판으로 들고 있는 걸로 봐선 교감한테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세요? 교감 선생님. 박 선생님이 문제면 저랑도 함께 얘기하시죠.”

교감은 지원군을 만난 것처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도 부장, 마침 잘 왔네. 여기 박시운 선생이 말이야, 오늘 화재 대피 훈련 때 애들 인솔하면서 실내화를 신긴 채로 운동장에 나왔지, 뭐야. 그러면 실내가 지저분해지니 내가 생각 좀 하면서 지도하자고 타일렀거든.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 잘났다더니, 교감 앞에서 자기가 옳다고 따박따박 말대꾸하잖아, 글쎄.”

도지수 선생님은 나를 잠시 훑어본 다음 교감한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데리고 가서 얘기하죠. 우선 박 선생님, 교실로 가 있어요.”

내가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교감이 나 들으라고 하는 혼잣말이 너무 잘 들렸다.

거 참, 요즘 사람들, 윗사람 알기를 뭐로 알고, 쯧쯧쯧.”

난 못 들은 척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상대 기분 때문에 억지로 사과하는 건 비겁한 짓이다. 상대가 꼰대라면 더욱더. 차라리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고 말지.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나는 교감에서 따지려고 한 게 아니다. 잠깐 얘기 좀 하자길래 나도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 주입할 거였으면서 왜 대화인 척해서 내 말을 말대꾸로 만들어 버리냐고.

그런데 교무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교감의 버럭하는 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다.

뭐요?! 도 부장, 지금 날 가르치려는 거야?”

난 다시 급하게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도지수 선생님이 교감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작년 소방서 합동 화재 대피 훈련 때, 소방대원 말이, 훈련일지라도 신고 있던 실내화로 신속히 대피 연습을 하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늘 방송실이 아니라 교실에서 지도했더라도 저희 반 아이들은 실내화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대피했을 거예요.”

내가 들어온 걸 두 사람 다 알아챘다. 교감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두어 차례 한 뒤 말했다.

일단 박 선생 데리고 나가요. 이 건은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도 선생님은 교감한테 정중하게 인사한 뒤 나를 교실로 데리고 갔다. 교감한테 보여주려던 서류는 펼쳐 보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선생님까지 좋지 않은 상황에 엮인 것 같아서 죄송스러웠다.

왜 그러셨어요? 저야 잠깐 있다가 가면 그만인데.”

도 선생님은 오히려 날 안심시키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박 선생님처럼 아직 시작하는 단계가 제일 중요한 거야. 처음부터 뭐가 옳은지 알고 시작하는 게 신규 교사의 의무라면, 선배는 후배의 바른 생각을 지켜줄 책임이 있거든. 오늘 선생님이 아이들 인솔한 거 나도 방송실에서 다 봤어. 그게 맞는 거였고, 교감 선생님한테 얘기한 것도 정확했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바른 생각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해. 물론 우리 교감 선생님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 잘 안 통하겠지만. 윗사람한테 말할 땐 최대한 상대방의 말을 수긍해주면서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요령이 필요한 거야. 박 선생님이 오늘 그걸 잘 못해서 교감 선생님이 더 역정을 냈는지도 몰라. 가끔 본질이 아니라 태도로 트집 잡는 사람들이 있거든. 실내화냐, 운동화냐로 문제 삼았다가 말투로 트집 잡는 것처럼 말이지. 아마 현장에 나오면 더 자주 겪게 될 거야. 그런 건 주의하라고. 박 선생님을 보면 꼭 내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잘 챙겨주고 싶어.”

솔직히 나 같이 사람 만나는 걸 꺼리는 놈한테 그런 부분은 정말 어려운 영역이다. 아무리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내가 겪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나라는 인간은 더욱이 응용력 또한 떨어지는 축에 속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냥 부딪치는 수밖에.

4주의 교생 실습 버티고 얻은 건 도지수 선생님과의 인연이 전부라 할 수 있다. 교생 실습 중 참여한 수업 시연이나 학교 행정 업무는 한 해의 학교 루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어차피 현장에 나가면 어떻게든 배우게 되기 때문에 당장 잘 몰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교생 평가 또한 P/F로 갈리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건 사람과의 만남이다.

실습 마지막 날, 선생님과 나는 서로 선물을 준비했다. 도 선생님은 현장에 나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다는 내용의 카드와 함께 임용 시험을 잘 보라고 초콜릿을 선물로 주셨다. 나는 이제 곧 여름 방학이니 더운 정장 대신 시원하게 입고 다니시라고 심플한 반팔 티셔츠 한 장을 고민 끝에 골라 선물해 드렸다. 선생님은 아주 잠깐 들릴 듯 말 듯하게 한숨 비슷한 걸 내쉬셨다가 금방 환하게 웃어 보이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20171216일 토요일

서울, T호텔

내 생활은 거의 변화가 없다.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은 수업을 듣고, 3일은 오후에 동네 보습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매주는 아니지만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주말엔 웨딩 싱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도 하나밖에 없는 검정 양복에 회색 체스터필드 코트를 입고 호텔로 가는 중이다. 호텔 로비를 지나 계단으로 웨딩홀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예식이 시작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하객들로 즐비할 웨딩홀 입구는 아직 오전 9시밖에 안 된 시간이라 한산했다. 난 웨딩홀 앞 널따란 복도를 지나 복도 끝에 있는 웨딩 사업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박소라 대리가 아침부터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한테 일감을 전해주는 사람이 박 대리이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이제는 조금 부담스럽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시운 씨. 일찍 왔네.”

나보다 고작 한 살 위밖에 안 되면서 꼭 반말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는 나는 중에 이니 어쩌랴.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내가 먼저 업무용 대화를 꺼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요. 오늘은 두 건이라고요?”

. 일단 1130분에 하나, 130분에 하나. 그런데 두 번째 웨딩은 조금 더 신경 써 줘. 중요한 손님이니까. 그리고 오늘 시간 있어?”

뭐 얼마나 대단한 손님이길래 그래요? 누군데요?”

난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업무 관련 대화만 하고 싶었다.

시운 씨가 그것까지 알 건 없고, 그냥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 주면 돼. 오늘 목 상태는 괜찮지? 노래는 전에 말한 곡 그대로야.”

오늘 부를 노래는 둘 다 좀 옛날 노래들이다. 1130분 예식은 나는 TV에서 본 적도 없는 90년대 가수 김종서의 노래 <아름다운 구속>이다. 그나마 130분 건은 10년 전에 나온 이적의 <다행이다>. 선곡만으로도 신혼부부들의 나이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이 한 인간의 삶에서 의미 있는 경험과 함께 할 때, 음악은 그 사람의 기억의 나이테에 파고들어 감정을 새긴다. 그래서 추억이 함께 한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음악과 관련된 당시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마들렌 효과의 청각 버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두 번째로 부를 <다행이다>는 박 대리가 조금 더 신경을 써달라고 했다. 뭐 더 신경 쓴다고 해서 나한테 없는, 김나박이 수준의 가창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실수 없도록, 정말 말 그대로 신경만 더 쓸 뿐. 1130분에 결혼할 부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예식에서는 힘 좀 빼고 불러야겠다.

1130분 예식이 시작됐다. 15분 정도 지나고 난 웨딩홀 우측으로 난 직원용 출입구로 들어가 하객들 눈에 안 띄게 대기했다. 신랑 신부 얼굴을 보니 예상대로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 둘 다 메이크업으로 얼굴을 과하게 치장했지만, 감출 수 없는, 눈가에 새겨진 세월의 그림자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머리에 힘을 주고 얼굴에 분을 찍어 발라도 연륜이 묻어난 눈빛까진 바꾸진 못하는 법이니까.

많은 사람을 겪어본 건 아니지만 난 주로 눈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이란 자기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눈빛과 인상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신랑은 180cm 정도의 키에 계란형 얼굴, 눈에 총기가 가득했고 웃을 때 눈가에 주름이 잡혀 나이가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주름은 상대가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게 만드는 그만의 무기 같았다. 하마터면 나도 처음 본 신랑에게 인사할 뻔했다. 신부는 신랑과 나란히 섰을 때 신랑 어깨를 조금 넘는 키였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얼굴형도 동그란데 그 안에 자리 잡은 눈, , 입 모두 동글동글해서 연배에 비해 귀여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내 느낌이지만 두 사람 모두 억세게 살진 않았을 것이다. 간간이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힘에 부치는 일은 당했을지 몰라도 찌든 내가 날 정도로 자신과 남을 괴롭히며 살진 않았을 것이다. 웃을 때 상대를 편하게 만들고 다가올 수 있게 만드는 미소만 봐도 알 수 있다. 초혼인지 아닌지를 떠나 볼수록 둘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가 부를 시간이 됐다. 사회자가 축가 안내를 하자마자 바로 무대 위에 섰다. 1~2초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전주로 시작하는 노래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오늘의 주인공들이 가만히 서서 듣기만 하기엔 신나는 노래다. 반대로 지금 나처럼 점잖게 양복을 입고 부르기엔 모양 빠지게 만드는 노래이기도 했다. 흥을 돋우기 위해 내가 먼저 박수를 치자 하객은 물론이고 신랑 신부도 머리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고 호응해 줬다.

 

조금씩 집 앞에서
널 들여보내기가 힘겨워지는 나를 어떡해
처음이야 내가 드디어 내가
사랑에 난 빠져 버렸어
혼자인 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 거야

 

한적한 시골처럼 보인다. 넓은 마당에 누렁이 한 마리가 심드렁하게 엎드려 있다. 참 순하고 착해 보인다. 저쪽에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오는데, 뒤따라가는 아빠가 넘어지면 잡아줄 요량으로 두 팔을 아이 양어깨 밑에서 받치고 있다. 대문 옆에는 작은 가게가 나란히 붙었는데 이 집 마당과도 통한다. 그 가게 안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엄마가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아기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자신에게 크나큰 축복인 것처럼 활짝 웃으며 쪼그려 앉아 아기가 자신에게 안기길 기다린다. 아기가 엄마에게 안기자, 엄마는 함박웃음과 함께 아기를 품에 안고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뒤에 있던 아빠가 엄마와 아기 볼에 차례로 입 맞춘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떴다. 축가를 부르면서 보기 드문, 행복한 장면이었다. 덕분에 내 마음이 다 편안했다.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예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를 찾아가 “잘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축가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미리 보는 동안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의 나는 나서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속으로 두 부부의 삶을 응원했다.

축가를 부르고 나면 보통 담당자를 만나 수당을 받고 퇴근하지만, 오늘은 한 건이 더 있으니 호텔에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로 속을 달랬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배를 채우기 위해 점심을 먹었다가 혹시 체하기라도 하면 남의 결혼식을 망칠지도 모른다. 나름의 프로의식이 음식을 절제하게 만든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이라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게다가 결혼식이니까.

1시 30분 예식은 조금 더 신경 써 달라는 주문도 있었고, 목도 풀고 마음을 다잡을 겸 해서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웨딩 사업부 사무실에는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지만 나는 그 기계를 쓸 일이 없다. 아침이든 한낮이든 커피를 조금이라도 마셨다간 밤잠을 설치기 때문에 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받아 옥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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