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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 N 웨딩 컨벤션
우리 차가 늦는 바람에 친구들과 축가를 맞춰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식 직전 무대에 올라 보는 마지막 연습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입장 방법, 무대에서 각자가 서는 위치, 율동 등을 점검하기 위해 예식홀로 들어갔다. 입구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웨딩홀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화려하면서도 규칙적인 모양으로 빛나는 조명 빛에 살짝 위축됐다. 이런 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평소 교회 강당에서 했던 연습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격려했다.
예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5분. 총연습을 끝내고 우리는 예식홀 앞 로비로 나왔다. 조금 전과 달리 로비는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볐다. 사람들이 많아서 길을 잃지 않게 짝꿍과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했다. 나올 땐 못 몰랐는데 웨딩홀 입구 오른쪽에 김진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지난번 유치원에 왔을 때보다 더 멋지게 차려입었다. 제비 꼬리처럼 뒷날개가 늘어진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머리를 고슴도치처럼 멋지게 세웠는데, 그 모습이 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왕자님을 흉내 낸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혼자였다. 아저씨 반대편에서는 한복 차림의 할머니와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찾아온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하느라 분주했다. 그분들은 선생님의 엄마와 아빠였다. 그에 비해 아저씨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도,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분들도 없었다. 대신 아저씨는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꼭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곧 예식 시작인데 아직 부모님이 도착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저씨가 혼자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회였다. 우리는 아저씨한테 가서 인사하기로 했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자 긴장했던 표정을 지우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저씨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늘 가수 여러분들이 잘해 주어야 선생님이랑 아저씨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노래 잘 불러줄 수 있죠?”
“네.”
우리들은 창피함도 모르고 사람이 많이 모인 웨딩홀 앞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꼬맹이들의 기운찬 대답에 아저씨는 일어서면서 예의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예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멈춰서 돌아보자, 내 손을 잡고 있던 연희도 덩달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다시 몸을 낮춰서 내 귀에다 대고 나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아저씨가 시운이한테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아저씨 좀 잠깐 따라올래?”
무슨 일이지? 나한테 정말 독창이라도 부탁하려고 그러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연희의 손을 놓았다. 아저씨를 따라가면서 연희한테는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웨딩홀 한 층 위, 아래층과 달리 조용한 복도를 걷다 보니 벽을 유리로 마감한, 비슷해 보이는 방 몇 개가 한편에 줄지어 있는 곳이 나타났다. 아저씨는 그중 두 번째 문을 열어 날 먼저 들여보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테이블 1개와 의자 2개만 있는 좁은 방이었다. 출입문과 그쪽 벽면은 유리였고 양쪽 벽은 보통 시멘트벽 같았다. 온통 유리로 된 출입문 쪽 벽은 아래는 투명, 윗부분은 뿌옇게 처리한 불투명 유리였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계산기와 전화기, 작은 메모지, 볼펜 그리고 처음 보는 기계가 있었다. 그 기계에는 ‘현금 계수기 2호’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저씨는 의자를 꺼내 나를 앉혔다. 그리고 테이블 반대편으로 돌아가 의자를 꺼냈지만 바로 앉진 않았다. 앉기 전에 예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 목에 걸어주었다. 차가운 금속성 물질이 목에 닿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내 목에 걸린 물건이 뭔지 확인하려고 오른손으로 무거운 추 같은 걸 받쳐 들었다. 목걸이였다. 내 손에 올려진 펜던트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지만 무게는 제법 나갔고,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푸르스름하게 반짝이는 투명한 보석 하나가 박혀 있었고, 그 주변을 작고 하얗게 반짝이는 보석 여러 개가 감싸고 있었다. 보석들은 은처럼 보이는 하얀 금속에 고정되어 펜던트를 이루었고, 그 펜던트를 연결하고 있는 은색 사슬은 우리 엄마가 하는 목걸이와 달리 조금은 두꺼운 편이었다. 누가 봐도 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약간 부담스러운 두께였다. 그 부담과 무게가 고스란히 내 목에 걸려 있었다.
“너한테 그걸 선물로 주고 싶은데, 괜찮니?”
아저씨는 그제야 입을 뗐다.
“왜 이걸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결혼식 때 이 목걸이를 목에 걸고 노래를 부르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축가를 불러줘서 너희들 모두한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네가 노랠 잘 부른다고 선생님이 추천하기도 했고…… 아저씨도 더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너한테 주는 거야.”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슨 좋은 일이 생기는데요?”
나도 아저씨가 친근하게 느껴져서 이제는 말을 붙이기 쉬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표정과 눈빛을 싸늘하게 바꾸더니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앞으로 나왔다. 순간 나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지 겁났다. 감사를 표하고 아저씨가 한 말을 그대로 물어봤을 뿐인데 뭘 잘못한 거지?
아저씨는 나를 지나 내 등 뒤에 있는 유리문을 향해 달려가 문을 열었다. 나는 고개만 돌려 아저씨가 뭘 하고 있는지 슬쩍 봤다. 아저씨는 문 밖으로 몸을 반만 내밀고 복도 좌우를 살피며 누구를 찾는 것 같았다. 누가 이 앞을 지나간 건가? 그게 그렇다고 다 큰 어른이 술래잡기하듯 갑자기 뛰쳐나갈 일인가? 여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예식장이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이다. 아저씨는 그렇게 잠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다가 소득 없이 내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안하구나. 아까 뭐라고 물어봤지?”
아저씨는 자신의 행동은 설명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목걸이를 걸고 노래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요.”
나는 다시 마음이 콩알만 해져서 하려는 말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건 좀 이따 노래를 부르면 알 수 있을 거야.”
아저씨는 어색하게 짧은 미소를 지은 다음 금세 미간에 세로줄 두 개를 세우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목걸이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것 때문에 이 목걸이를 노리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 어쩌면 지금도 이걸 노리는 사람이 와 있을지 몰라. 지난번 유치원에 갔을 때 아저씨는 누가 이 목걸이를 받으면 좋을지 살펴보고 있었어. 선생님이 추천하기도 했고 아저씨도 시운이, 네가 마음에 들었어.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도 잘 지내고, 양보도 잘하는 데다 입이 무거워서 비밀도 잘 지킬 아이라고 말이야. 결국 이 목걸이를 받을 적임자는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적임자’라는 말에 기분이 으쓱해졌다. 아저씨는 내게 대답을 종용하며 물었다.
“잘 갖고 있을 수 있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아저씨는 다시 테이블을 돌아서 내 옆에 섰다. 펜던트를 내 상의 안에 넣어 준 다음, 내 어깨에 한 손을 얹고 허리를 숙여 지그시 내 눈을 바라봤다. 그 행동과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나를 사로잡았다. 아저씨를 믿어야 하고, 아저씨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의지 같은 게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때 난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이랑 결혼하는 멋진 아저씨가 나를 따로 불러서 부탁을 했고, 목걸이를 선물로 줬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그리고 그 목걸이에는 어떤 특별한 능력도 있다고 했다. 그런 대단한 물건을 내가 갖게 된다니. 내가 그런 사람이란 말이지?
나는 믿어도 좋다는 의미로, 강한 눈빛으로 아저씨와 눈을 맞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마음이 놓이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당부를 했다.
“그런데 이 목걸이는 20년 동안 갖고 있어야 해.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도 되고 아니면 계속 가지고 있어도 돼. 아저씨도 20년 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거란다. 20년이 지났을 때 시운이처럼 믿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줘도 되고, 만약 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아저씨에게 다시 돌려주렴. 지금 시운이가 7살이니까 27살까지 잘 간직하면 된다는 말이야. 그럼 네게도 큰 행운이 찾아올 거야. 할 수 있겠니?”
“네, 아저씨.”
나는 아저씨와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대단한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그전까지 수줍어하던 태도도 버리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아저씨는 문을 열어 나를 먼저 내보냈다.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다가 뒤를 돌아서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때 아저씨는 나를 보고 살며시 웃어주었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 김인애 양이 입장하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아 주시길 바랍니다.”
결혼식 사회자가 신부 입장을 알리자, 예식홀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한 줄기 조명이 신부가 탑승하고 있는 웨딩 리프트를 비췄다.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에 맞춰 선생님이 탄 리프트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선생님과 선생님의 아버지는 단상 앞쪽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아저씨가 마중 나와 인사한 후 선생님의 손을 잡은 다음 주례자 앞에 섰다.
그 이후는 웅얼거리는 부정확한 목소리와 지루한 진행 때문에 재미가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했다.
사회자가 드디어 우리의 등장을 알렸다.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두 부부를 위해 아주 특별한 초대 가수를 모셨습니다. 신부님의 유치원 제자들로 구성된 오늘의 초대 가수를 소개합니다.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리들은 연습한 대로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들도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연습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관객이 없었을 때와 꽉 차 있을 땐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반주가 나오길 기다리며 연습한 대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준비한 노래를 예쁘게 부르기 위해 우리 모두 속으로 큰 용기를 냈다.
축가가 시작됐다.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 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아빠 일터 갈 때 주고 받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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