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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 라디오

자기 만족을 위한 배려

왕구생각 2016. 4. 2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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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참 듣기 좋은 말이고, 보든 행하든 대상자가 되든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제 나와 동학년인 신규 A선생님 반에서 학부모와교사, 학부모와 학부모 사이에서 크면 크고,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문제가 생겼다. 해당 A는 아직 경험도 미약한데다 똑부러지는 성격도 아니어서 학부모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안타깝긴 했으나 상황을 알고 있어도 내가 직접 도와줄 일이 마뜩치 않았다. 10여 년 전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나로서는 그 당시 모든 상황에 대해 나만 억울하고, '아무도 내 편이 돼 줄 수 없구나'라는 불편한 진실만을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앞으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내 경험적 교훈을 지금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누가 무슨 얘길해도 들리지 않는다.)

힘든 A를 위해 우리 학교 관리자는 저녁 먹고 힘내자며 A와 나를 식당으로 데라고 갔다. 힘들어 하는 신규 교사에게 그 정도 배려를 해 주는 관리자를 보며 그래도 연배와 직책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하고 나서 그 생각은 글쎄...그 자리는 A를 위한 위로 자리가 아닌 우리 학교에서 새로 채용한 운동부 코치를 위한 환영회였고, A와 나는 그냥 곁다리였다. 나야 크게 관계 없지만 A는 더더욱 그 자리가 불편했을 것 같다. 누가 원한 것도 아니고, 자기는 신경써야 할 일 때문에 정신은 딴 데 가 있는데, 생전 처음 보고 자주 볼 일도 없는 앞에 앉은 사람을 환영해 줘야 한다니... 거기다 평소 학교 시설관리를 해 주는 분의 노고도 치하한다고 그 분까지 모셨으니 그 자리는 목적이 무엇이고, 동석한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걸까? 답은 뻔했다.

그 동상삼몽의 저녁 식사 자리는 2차와 3차로 이어졌는데, 난 1차만 하고 빠졌다. A에겐 미안하지만 목적도 불분명하고 술 소비만을 위한 그 자리에 내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은 더더둑 없었다.

그 자리는 정말 A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격려를 해 주기 위한 자리였을까?

술 자리 채울 사람을 찾던 중 A와 내가 눈에 걸린 거 아닌가?

들어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면 당사자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것이 진짜 배려가 아닐까?

20대 중반에 읽었던 은희경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단편집 중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란 소설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는 묵묵히 내 앞에 놓인 도가니탕 그릇에 소금을 넣어주었다. 도가니탕은 조금 짰다. 간은 그의 식성에 맞춰져 있었다. 남을 위해준다는 것이 간혹 그렇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게 되어버리는 때도 있다.

이게 사람들이 실수하고 있는 배려의 모습 아닐까?

배려라는 가면을 쓰고 자기 만족대로 휘둘러 버리는 모습은 상대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관점이 좁아지고 아집이 늘어 다른 사람의 말을 덜 듣게 된다고들 한다. 숱한 세월을 견디고 살면서 경험도 늘고 만난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 오히려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건 무슨 이치일까?

나이가 들고, 안 들고를 떠나 다른 사람을 위한답시고 '이렇게 해 주면 되겠지'라는 착각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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