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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슴 철렁한 일을 당했다. 큰 일이라면 큰 일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하찮게 치부할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년 동안 얼굴 마주해야 할, 나보다도 한 참 어린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은 그 일을 그냥 한 번 웃고 넘어갈 만한 일로 만들지 않았다. 특히 2년 전 내가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나와 관련된 사람이 내가 당한 것과 비슷한 일로 너무 괴로워 한 나머지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었기 때문에, 이번 일은 나한테 트라우마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게 상처를 남긴 당사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그 부모와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솔직히 부모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각자의 상식이 다르겠지만(이 말도 이상하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이어야 할 텐데. 영어로도 common sense라고 하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나의 상식은 미성년의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 자녀를 대신해 부모가 사과하고 자식의 잘못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고가 미성숙한 어린 자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때문에 자식을 양육하고 보살피는 부모는 자신이 자녀를 잘못 가르치고 길렀다는 책임감으을 갖고 '부모'로서 자녀를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하고 다음 날, 내 상식과 상대의 상식이 통했는지 부모가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는 부모에게 아이의 문제를 지적하고 내가 입은 심적 피해를 전했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잘못을 저지른 건 아이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부모님의 논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평행선 같은 대화가 30분 정도 이어졌다.

 

참다 못한 나는 부모님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미 아이와는 '넌 아직 10살을 조금 넘긴 아이고,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과하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하면 끝'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부모님과는 이 문제를 그렇게 얼렁뚱땅 넘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부모님은 자녀가 저지른 일로 내가 댁의 자녀에게 해코지할까봐 걱정이 돼서 왔을 뿐이지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집에서 혼을 냈다. 하지만 사과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하고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부모님의 반복적인 주장에 더 이상 대화가 안 통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마디만 더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아버님,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걸까요? 그 누가 어떤 책임을 진다고 해도 상처는 남습니다. 자녀의 입장만 생각하지 마시고, 피해 입은 상대의 마음도 한 번 헤아려 봐 주십시오."

사과가 그렇게 힘든 일일까?

작은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보통 곧바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잘못의 무게가 조금 커졌다 싶으면 이상하게 자존심을 세우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본다. 흔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인데,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종종 있나 보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그 분의 신념이 정말인지 아니면 순간적인 기싸움에서 지기 싫은 자존심 세우기였는진 나로선 알 수가 없다. 다만 난 그 분의 자녀 덕분에 배신감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부모님과의 설전으로 상처에 소금을 뿌린 기분이었다.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런 경험과 상대방을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고, 나와 내 주변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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