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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 라디오

가을이 오면...

왕구생각 2020. 10. 1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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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청명한 하늘, 단풍. 

가을을 표현하는 수식어이자 대표적인 이미지다.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yuiJO6bvHi4

겨우내 생명은 몸을 웅크리고 그 활동 반경을 줄여 차디찬 땅 속과 저마다의 공간에서 봄이 오길 기다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은 따뜻한 햇살과 얼었던 땅을 녹이면서 생긴 물을 생명에게 제공한다. 생명은 기지개를 켜고 세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시동을 건다. 하지만 햇살을 받으며 세상을 나오는 건 생명에게 고통과 노력을 요구한다. 씨앗은 자신의 몸을 찢어 싹을 내야 하고, 나무는 몸통 구석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간지러움을 이겨냄으로써 가지를 확장할 수 있다.

봄날의 빛과 따스함을 몸으로 즐기는 여유도 잠시, 이제 자연은 더위를 몸으로 받아내며 몸 안에서 양분을 만들고 다시 내년 준비에 들어간다. 자기 몸을 부풀릴 수록 더 많은 양분이 필요하기에 가지마다 빼곡히 잎을 만들고, 그 잎으로부터 나무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제 해가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한여름 동안 뜨거운 태양을 버텨내기 위해 나무는 녹색으로 자기 몸을 방어했지만, 이제 나무도 지쳤기에 탈수 증상이 나타난다. 잎은 봄부터 여름까지 양분을 만들기 위해 간직해 왔던 엽록소를 빼면서 수분도 날린다. 사람들은 단풍이란 이름으로 즐거워하지만 나무 입장에선 한 해가 저물어가는 단계에서 치르는 의식으로 쓸쓸하다. 

가을 나무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함께 쓸쓸해하고 고독해진다. 그 동안의 일,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외로운 마음에 누군가과 함께 있길 바라지만 막상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눈에 안 보인다. 흔히들 '가을을 탄다'는 말로 그런 마음을 대변한다.  

나무가 지나온 한 해의 여정은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다. 겨울 동안 웅크려지내다가 봄이 오면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뜨거운 여름에는 태양을 피하려 하지만 가장 활동력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일을 마무리하는 단계가 되고 다시 겨울에는 휴식기를 지낸다.

요즘이야 농사가 주된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프로젝트에 맞춘 생활리듬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주는 이미지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게 하고 우리들 스스로를 그 기운에 맞게 살아가게끔 한다.

 

가을이 왔다.

그런데 난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아니다. 전에는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강도가 더 커졌다.

3년 동안 '아니겠지, 아닐거야.'라고 몇 번을 고쳐 생각하면서 이 글을 미루고 미뤘다.

어느 순간부터 가을이 오면 난 까칠해졌다. 괜히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던 일들이 삐뚤게 보였고, 심술이 났다. 잘 지내던 사람들에게 가시돋힌 태도를 보였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몸도 이상하게 아팠다.

이러길 벌써 4년째다. 다행히 올해는 좀 덜하다. 

그래도 그 심보가 완전히 없어지질 않았다. 2년 전엔 이런 태도가 극에 달해 직설적으로 내게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자기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당연히 없다. 

왠지 모르겠는데 가을이 오면, 난 이상해진다. 그러다 겨울이 왔다 싶으면 예전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가을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을 준비한다. 더불어 자신이 여름내 모았던 양분으로 열매를 맺어 주위에 베풀기까지 하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다. 그 동안 잘 구축했던 이미지를 깎아먹고, 그 이미지는 내 평판으로 굳어 내년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시작하니 말이다.

 

그 원인을 나름 분석해 보고 내 나름으로 내린 결론은 '봄과 여름에 너무 바쁘고 힘들게 살아서 그래'였다.

실제로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느라 봄엔 힘들었다.(난 이 과정에서 시간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여름엔 기력을 다해 움직였다. 그러니 마무리가 되는 가을엔 지칠 수밖에. 또 체질적으로 여름 나기를 힘들어 하는데 여름에 에너지를 쏟다보니 긴장이 풀린 가을엔 완전히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봄과 여름에 애를 쓰지 않기로 했다. 흘러가는 대로 애쓰지 않고 여유를 즐기며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몸도 덜 아프고 마음에 상처를 입지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았다.

'자연적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라는 말은 그 말 속에 큰 의미가 있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를 때,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도(물론 내 경우에 한해서지만) 자연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쓰고 나니 이게 다 뭔 X소린가 싶네. 이딴 걸 쓰려고 3년을 묵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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