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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 도서관

여행의 이유

왕구생각 2019. 6. 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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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로 1인 방송이 많아지고, 유튜버라는 신종 직업에 유명세까지 얻은 이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TV 방송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 TV 방송은 새로운 스타를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방향으로도 발휘되고 있다.

새로운 스타 '발굴'이 아니라 '소개'라고 한 것은, 아직 대중들에게 널리 익숙하지는 않았던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이미 굵직한 획을 그은 그들이 TV를 통해 대중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 쉐프, 스타 강사, 스타 작가들이 그들이다.

그 중에서 TvN에서 방송했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통해 우리에게(어쩌면 나에게) 친숙해진 작가로 김영하 작가가 있다. 그 방송을 통해 나는 김영하라는 이름을 각인하게 됐지만, 사실 그는 이미 소설과 방송, 강연을 통해 이미 유명인이었다.

그 방송 후에 그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어 봤는데, 내가 읽은 후 얼마 안 있다가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서 그가 쓴 글의 인기를 다시 실감하기도 했다.

 

이번에 그가 낸 책은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여행'에 관한 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도 자주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결혼하기 전 우리 4식구 중 유일하게 여권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한 현재도 여권이 없다. 다행(?)인 것은 우리 색시도 나만큼 여행을 즐기지 않아 둘 다 신혼여행을 국내에서 끝냈다. 우리 색시도 여권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 후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어딜 많이 다니지 않았다. 처가와 우리 집이 각각 우리나라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있었기 때문에 일년에 3~5회 정도 가는 처가 방문을 여행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자주 하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작가 김영하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나와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재미는 은근히 쏠쏠하다. 오죽하면 요즘 연예인들의 사생활(이진 않겠지만 그렇게 보여주는) 방송─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호구의 연애, 연애의 맛─이 우후죽순 생겨나겠나?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것이 전업 작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또 집필과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내 궁금증을 풀어주듯 <여행의 이유>의 첫 번째 챕터 '추방과 멀미'는 집필을 위한 작가의 여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교수를 겸업하던 그는 학기 중에 집필이 안 되어서 방학을 이용해 집필 여행을 떠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겸업을 하면서 작품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공감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작중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인물이 자기도 모르는 스스로의 버릇이나 습관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는 내용도 있다. 여행에 대한 내용을 떠나 아무 것도 모르지만 소설을 쓰려고 꿈틀대는 내게 그런 내용은 더 없이 좋은 정보이자 숙제였다. 비슷한 예로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업 작가인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소설이 아닌 글을 좋아한다고 한 이유는 그의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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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미주나 유럽에서도 제법 알려진 작가다. 그는 여러 인터뷰나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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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주제가 여행에 관한 책이니만큼 이 책은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화에서 얻은 깨우침(?)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환대'와 '신뢰'였다. 낯선 곳에서 온 이들을 본 원주민은 그들을 경계할 수도 있고 관심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략자가 아닌 여행자라는 것을 안 정주민들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여행자를 환대해 왔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들의 환대에 신뢰롤 보임으로써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인류애를 펼치며 지금까지 살아나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작가는 서술하고 있다.   

여행자가 보내는 신뢰는 환대와 쌍을 이루고 있다. 신뢰를 보내는 여행자에게 인류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중략)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세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P. 144~148, 문학동네, 2019.

 

나는 책 말미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꼭 읽는다. 탈고하면서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을 독자에게 전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작가가 왜 챕터 구성을 이렇게 했고, 여행을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다시 한 번 갈무리 할 수 있어서 여기에 남겨보려 한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리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P. 213, 문학동네, 2019.

 

글을 다 읽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위에서 밝힌 대로 나는 작가의 삶이 궁금했고, 책에서 그것을 얻었다. 

유명한 작품으로 이름을 얻은 그였지만 그 후에도 전업 작가로 살아가야 할지 깊은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나처럼 함부로 까불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늦은 나이지만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면 안 되겠지라는 배짱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깔끔한 글을 읽고 나니 역시 괜히 김영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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