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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 도서관

쾌락독서

왕구생각 2019. 6. 2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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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과 (남이 뭐라 생각하든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고 있지만(물론 올리지 않은 책도 있다.) 난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더더군다나 빨리 읽지를 못해 (단적으로 같은 책을 읽더라도 우리 색시는 2시간이면 읽는 책을 난 이틀이 걸릴 때가 다반사다) 한 권을 오래 붙잡고 있는다. 

 

내가 책을 느리게 읽는 건 아무래도 어렸을 때의 독서 습관 때문인 듯 싶다. 남들은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나는 부모님한테서 "넌 왜 책을 안 읽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아예 책에서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다만 집집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세계문학전집 같은 책을 안 읽었기에 부모님한테서 잔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이가 있는 집 부모들은 몇 십권씩 세트로 묶인 전집을 구매해서 아이 방 책장에 넣어주고 있는데, 부모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내 아이가 이 책을 읽어서 독서에 흥미를 붙이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람. 물론 후자에 더 중점을 두는 부모들이 많은 건 안 비밀.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나는 타자기로 친 듯한 글자로 인쇄 된 책을 읽는 것에 왠지 거부감을 느꼈다. 대신 빳빳한 아트지에 명조체로 인쇄된 백과사전을 주로 봤다. 지금은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어만 입력해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그런 정보는 백과사전에 있었다. 백과사전 마지막 권은 색인이다. 색인에서 원하는 검색어를 찾고, 다시 그 내용이 담겨 있는 책과 페이지를 찾아서 필요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백과사전은 빳빳한 용지에 놓은 글씨체만 내 마음에 든 것이 아니라 당시로선 생생한 정보라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잔뜩 들어있어 더 매력적이었다. 사회, 과학, 역사, 인물, 미술 등 내가 알고 싶었던, 아니면 그냥 넘겨보다 발견한 다양한 정보가 백과사전 안에 있었다.

 

백과사전을 보통의 책처럼 1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서대로 쭉 읽어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비슷했다. 알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만(이 때 필요한 내용은 주로 역사 만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이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색인으로 시작해 백과사전을 살폈다. 하지만 그냥 심심할 때도 영역을 정해 백과사전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기웃거렸다. 때문에 긴 글을 한 번에 읽는 것에 취약했다. 필요한 내용 위주로 짧게 짧게 취하다 보니 집중력과 지구력을 기르지 못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이런 안 좋은 습관은 고등학교 때 수능 모의고사를 풀면서 언어영역 점수로 드러났다. 그래도 초등 6년, 중학교 3년 도합 9년 간 국어만큼은 자신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100분 간 주어진 64문제, 12개 정도 되는 긴 지문은 그 동안 내 모국어 사용 능력을 비웃었다. 몰라서 틀린 건 둘째 치고, 시간이 없어서 못 푼 문제가 많았다. 시험이야 유형을 파고 연습하면 되는 것이라 나중에 실제 시험에서 참담한 상황은 면했다. 그치만 그 때 처음으로 내 독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학에 가서도 전공 서적은 물론 다른 책도 별로 읽지 않았다. 세기말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맛본 나는 책보다는 모니터를 보는 일이 많았다. 

 

독서에 대해 고해성사를 풀어놓는 건 최근에 읽은 <여행의 이유>나 오늘 읽은 <쾌락독서>의 작가들과 내 삶을 비교하니 저절로 반성 모드 스위치가 켜졌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그들은 어렸을 때 책에 파묻혀 살았다고 고백한다. 한 사람은 부모님이 근무지를 자주 옮기는 탓에 정 붙일 곳이 없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다른 책 제목처럼 누군가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그러고 보면 나는 초중고, 대학교를 한 동네에서 나왔지만 동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금은 오히려 더 동네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성향 탓이다. 나와 같은 처지였던 내 동생은 여전히 어렸을 때 어울리던 동네 친구와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고 어울린다. 김영하나 문유석 둘 중 하나를 굳이 고른다면(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지만) 난 문유석 쪽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책을 친구처럼 여기진 않았다.

 

내가 책을 즐기게 된 건 순전히 결혼을 하고 난 후다. 나와 달리 우리 색시는 거의 활자 중독 수준의 독서를 한다. 책도 안 읽는 나는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그래서 부부가 취미를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주 1~2권 정도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어쩌다 책을 읽을 땐 남들이 유명하다며 추천하는 책, 어디선가 들어본 책, 왠지 이 정도는 읽어줘야 교양인처럼 보일 것 같은 있어 보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강제적인 강압적 정보와 독서 의도는 더욱 나와 책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쾌락독서>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세상엔 알려진 좋은 책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이 많다. 그 모든 책을 다 읽을 순 없다. 그러니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들었다가 내 입맛에 맞는 책을 읽어나가면 되는 것 아닐까?

 

<쾌락독서>를 읽는 내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광대가 솟고 입꼬리가 길어지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도 <상실의 시대>를 읽었는데, 지금은 기억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부분, 딱 그 부분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왜 그 부분만 기억하고 있었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나처럼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 책, <쾌락독서>를 읽고 독서의 즐거움을 함께 누려봄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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