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1984년 분단된 독일.

서독 베를린에서 미국인 초보 여행 작가와 동독에서 망명한 영독 번역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유년 시절 화목하지 못한 부모 때문에 스스로를 외로움으로 감싸고 산 20대 미국인 남자, 토마스 네스비트.

서로를 감시하며 살아가는 회색빛 사회주의 동독에서 태어나 모든 욕구를 억누른 채 살지만 갓난쟁이 아들을 빼앗기고 서독으로 추방된 여자, 페트라 두스만.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진짜 사랑, 진실한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각국 정보국과 스파이는 그들의 사랑에 베를린 장벽처럼 개입한 채 그들이 행복이란 걸 맛보자마자 빼앗아 버린다.

미국으로 도망쳐온 토마스는 훗날 자신의 이혼, 누구보다 소중한 딸 그리고 페트라와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삶이란 선택의 집합임을 깨닫는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기욤 뮈소와 비교했을 때) 남성적이고 선이 굵으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등지고 외톨이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또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 토마스도 그랬다.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상대에 얽매일 수도 있다는 속박감 때문에 도망치기에 바쁘다. 그러다 여행기를 쓰려고 간 서독 베를린에서 한눈에 페트라를 만나 소심하게 사랑을 갈구한다. 연애 선수 같은 능수능란함이 아닌 어리숙한 모습이 더 사랑스러운 건 그가 이번에 느낀 사랑이이야말로 진정이 순수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내주고 해 줄 수 있는 순수한 사랑.

 

페트라는 동독에서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도시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촉망받는 희곡 작가인 유르겐이란 남자를 만나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그녀에게서 아들은 암울한 동독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다 남편이 비밀경찰에 잡혀가면서 덩달아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도 비밀경찰에게 납치돼 감금과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것도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을 빼앗긴 채. 서독에 잡힌 동독 스파이와 교환 조건으로 그녀는 서독으로 추방당하고 서독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동독이 그녀를 스파이로 심기 위한 전략이었다. 아들을 되찾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협박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며 서독에서 산다. 그러다 라디오 리버티 방송국을 방문했던 토마스를 보고 처음으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다.

 

최근엔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사랑에 가슴 조려 하고, 절망의 순간에 덩달아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글 가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 전개에 집중했을 뿐. 그런데 <모멘트>를 읽고는 그런 찡한 감정이입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토마스와 페트라가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데서 설레었고, 둘의 찐한 사랑을 묘사한 장면에선 나도 연애 시절의 감정을 떠올렸었다. 그러다 페트라를 내쫓는 토마스를 보며 속이 쓰렸고, 잠시 책을 덮었다. 

 

이 책의 제목은 <모멘트>다. 순간이란 뜻의 제목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순간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또 선택을 한다. 인생은 선택의 순간이 모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나는 글을 쓰겠다는 선택을 했고, (나중에 내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선택이 내 인생을 어떤 길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도시는 이렇게 될 수 있다. 골격은 그대로라도 한때의 모습을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인간도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아니, 그 반대로 살을 찌울 수도 있다. 옷으로 자기 이미지를 표현할 수도 있다. 부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자신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인간도 도시처럼 겉모습을 싹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과거의 이야기는 바꿀 수는 없다. 복잡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수없이 모여 이루어진 이야기. 
- 책 572~573쪽에서 -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거라 말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선택하고 행했던 과거의 나다. 결국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안개 속에 있다. 우리는 오로지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옳길 바라는 선택할 뿐이다.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완성.
인생에서 '완성' 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잃어버린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

- 책 590쪽에서 -

 

역사적으로 중요한 상징물이었던 베를린 장벽과 분단 독일을 소설의 소재와 배경으로 삼은 점은 독자를 소설에 빠져들게 했다. 40대가 된 나는 당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여담으로 늘어놓아 분단 독일과 통일 독일이 생소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나 20대 성인들까지도 독일이 분단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어쩌면 그들은 이 소설의 배경이 주는 효과를 못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애틋한 사랑과 이념분쟁이 주는 긴장감, 사랑을 잃은 허무감을 다 느끼고 오는 건 우리가 실제 겪지 못하는 감정들을 대리 체험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책 <비트레이얼>처럼 이 책에서도 여주인공을 성폭행하는 장면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그렇게까지 묘사하지 않아도 될 텐데 너무 자극적인 장면과 심리적 묘사는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마치 예술성은 있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역한 예술 영화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해피엔딩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우울하게 끝난다. 여주인공은 죽고, 남주인공은 사랑 없던 결혼 생활에서 이혼을 당하고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을 떠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자책한다. 그래도 소설을 읽고 나서 뭔가 해소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냈기 때문일까?

현실 세계에서라면 어쩌면 불가능했을 일을 소설은 너끈히 해낸다. 그 맛에 우린 소설이라는 마약을 계속 읽는지 모르겠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