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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첫째 주 토요일

서울, H 호텔 웨딩홀

 

다음으로 신랑 김태혁 군과 신부 조아름 양의 하나 됨을 축복하는 축가를 들으시겠습니다.”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듯한 사회자의 어색한 멘트가 끝나자, 홀을 오렌지색으로 장식하던 조명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 스피커에서 전주가 흘러나온다.

난 축가를 부르러 왔다. 그것도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정식으로 인사 한번 해 본 적 없는 김태혁이란 사람의 결혼식에.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이자 신랑의 후배인 주현이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수락했지만, 썩 내켰던 건 아니었다.

축가는 내 밥벌이 중 하나다. 일을 많이 할수록 수입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무 결혼식이나 가리지 않고 참석하는 건 아니다. 아는 사람이 낀 결혼식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고, 그렇게 해서 물린 부탁이 제법 된다. 차라리 나와 상관없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편이 낫다.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결혼과 행복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이 시작된 지금도 그때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원칙이란 걸 만들었으면 지켜야지.’ 같은 해 봤자 소용없는, 후회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어찌 됐든 일을 받은 이상 이제 와서 안 할 순 없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남의 잔치에 초를 칠 순 없는 노릇이고 축가비도 받을 테니 밥값은 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며 내 물러터진 마음가짐이 키운, 자책의 송곳을 무디게 했다.

전역 후 복학했을 때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2년 사이 내 주위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문자 메시지 대신 카카오톡으로, TV보다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는 태생적으로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걸 극도로 피곤해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난 나 편한 대로 스스로 주위에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비대면적이고 개인화된 세상에 적응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관찰한 누군가한테서 내가 외로워 보인다는 오해를 샀을지 모른다. 그나마 내가 마음을 열고 만나는 사람은 주현이뿐이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주현이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나를 세상으로 꺼내 준 고마운 친구다. 밥 먹고, 영화 관람 같은 일상적인 일부터 일자리 제안까지 어떻게 보면 그 녀석 덕분에 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한결같이 수동적인 나와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주현이, 시간의 마법은 우리 둘을 단단한 친구로 만들었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다행히 동네 보습 학원에 수학 강사 자리가 나서 비교적 빨리 일을 얻을 수 있었다. 3일 중학생 수학을 시간제로 가르치는 일이라 학교에 다니면서 하기에 괜찮았다. 나는 교육에 대한 사명감도 없었으면서 미래에 대한 보장과 취직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교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솔직히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교과목,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더이상 안 볼 줄 알았던 음악, 미술, 체육을 교대에서는 그대로 배웠다. 그 때문에 학교생활은 그저 그랬고 1학년을 마치자마자 바로 입대해 버렸다. 전역 후에도 복학을 서두르지 않았다. 막상 복학했더니 졸업반인 동기들은 임용 준비에 바빴고, 난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보다는 아르바이트할 때가 더 재미있고 마음이 편했다.

지금 하고 있는 웨딩 싱어도 주현이 덕분에 시작한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즈음 주현이를 만나 저녁을 먹던 날이다.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 보지 않겠느냐며 주현이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를 제안했다.

너 어차피 연애도 안 하는데, 주말에 시간 많잖아? 이거 해 봐.”

안 하는 걸로 인정해 줘서 고맙네. 난 못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꼬지 말고. 너 축가 부르는 거 내가 본 적 있어서 하는 말이야. 이거 너한테 괜찮은 일 같아. 노래 한 곡 부르는데 페이도 나쁘지 않아. 우리 병원 환자 중에 호텔 웨딩 업체에서 직급이 좀 되는 사람이 있는데, 괜찮은 웨딩 싱어를 찾더라고.”

그러면서 명함 하나를 내게 건넸다.

돈에 쪼들리는 것보다 주말에 일을 할 수 있는 일이고 축가라는 말에 혹했다. 사실 학창 시절을 포함해 축가를 부른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그땐 선생님이나 친척 결혼식이라 축가를 벌이 수단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축하하는 마음이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축가로 돈을 번다고?

결혼식 축가는 신랑 신부가 직접 부르거나 아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 웨딩 업체에서 영업 차원으로 비전문 가수를 소개해 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 비전문 가수란 영역이 참 애매하다. 가수로 데뷔한 사람을 쓰자니 업체에선 수당을 맞추기 어렵고, 가수들도 그런 일자리는 탐탁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나 데려다 시키기엔 업체로선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상관없지만 축가는 그런 성격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이 업계에선 성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약속한 날, 약속 시간에 축가 가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식 자체에 큰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형적이고 딱딱한 결혼식, 그 안에서 그나마 볼거리, 들을 거리라 여겼던 축가마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일생에 한 번 치르(고 싶어하)는 결혼식인데 얼굴도 모르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의 불성실로 축가가 펑크 난다면, 신랑 신부가 기대했던 예식의 흐름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결혼식에 참석한 모두는 축가가 자아낼 재미나 감동, 웃음과 환희 같은 마음 한구석에 추억을 새길 기회조차 잃게 된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축가를 주선한 업체에 있다. 앞의 경우, 애초부터 축가가 진행 순서에 없었다고 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약속과 신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결혼 서비스업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는 순간에 사업을 접어야 할 수 있다. 비행기나 호텔 예약에 실수가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문제는 잠깐의 손해를 보더라도 등급을 올려 주거나 다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불편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순서가 정해진 예식은 업체에서 준비한 축가 가수가 나오지 못했으니 행진곡을 조금 더 길게 연주해 드리겠어요같은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축가 가수가 올 때까지 모두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이 안 되면 그걸로 끝이다. 말 그대로 생방송이다. 생각해 봐라, 하객을 모셔다 놓고 녹화 방송으로 결혼식을 진행하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게다가 요즘은 입소문을 능가하는 인터넷 댓글이 서비스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 업계 종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으로 감정 노동 대열에 참여해 고객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그러니 비전문 가수라고 아무나 데려올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노래 실력이다. 성실성은 잠깐이나마 속일 수 있다. 대체로 일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초반엔 믿어만 주십시오!’ 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일은 성실성만 가지고 버틸 순 없다. 이 일은 나름 전문성을 요구하는 특수한 세계다. 신랑 신부를 위한 노래지만 결혼식장에는 두 남녀를 축하하기 위해 함께 모인 청중도 있다. 일반 가수야 자기만족과 팬을 위해 노래 부른다지만, 축가 가수는 창작성이나 팬덤 같은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막말로 일회용 가수다. 축가 가수가 엄청나게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팬이 형성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본인이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축가 가수의 역할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를 돋보이게 하고 분위기를 돋우는 정도에 그쳐야 하고, 청중 역시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노래를 못하면 분위기를 망치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잘 불러서 자신에게 이목이 쏠리게 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이왕이면 노래 실력은 좋은 편이 낫다. 그래서 업체에서는 적당한 축가 가수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오디션 보듯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안 해 본 일도 아니었기에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주현이가 소개해 준 업체에 연락을 하고 면접을 봤다. 주현이 소개로 왔다고 하니 일단 안심하는 눈치였다. 사는 곳이 어딘지 묻고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간단히 설명한 후에 가능한지부터 물었다. 결혼식이 잡히면 그때 바로 축가 가수에게 연락해 스케줄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어려울 건 없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노래 테스트를 한다고 하면서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슈퍼스타K 같은 전문 오디션도 아니었고, 내가 노래를 좀 잘한 게 아니어서 바로 계약했다. 페이는 건수에 비례하고, 업체와 내가 3:7로 나누는 거라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째 이 일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 결혼식은 아르바이트 업체와 상관없이 주현이가 따로 부탁한 건이다. 나 같은 사람이 공과 사를 구별할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안 받는 편이 나았을 거란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주현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게 계속 걸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락했던 건 주현이 때문이다. 물론 주현이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꼭 그 때문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호기심 때문이다. 나한테 부탁하는 일이 거의 없는 녀석이 내게 전화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선배를 챙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나한테 부탁한다는 뉘앙스였다. 왜 주변 사람 챙기기 좋아하는 녀석이 그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선배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고 결혼식에서 보고 싶었다.

신랑이 부탁한 축가는 김동률의 <감사>. 이 노래는 다른 축가들보다 전주가 조용한 편이고 첫 음이 굉장히 저음이라 시작부터 집중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보통의 축가들보다 전주가 조금 더 길어서 속으로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김동률 <감사>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면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지금, 이 순간, 넓은 웨딩홀을 채우고 있는 건 내 목소리뿐이지만, 나는 신랑 신부를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노래는 신랑의 눈을 거쳐 신부의 귀로 들어간다. 신랑은 눈빛으로 사랑의 노랫말을 신부에게 보내고, 신부는 내 목소리를 통해 신랑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나는 지금 여기 있지만 보이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철저히 신랑 신부여야 하니까.

결혼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지금 이런 상황을 나름의 매뉴얼로 만들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두 사람을 비추고, 하객들이 나를 잘 볼 수 없도록 어둠 속에 나를 숨겼다. 이것만 봐도 이들은 프로다. 내가 배경 역할을 완벽히 해낼수록 이 두 사람은 빛이 난다. 웨딩 싱어란 그런 존재다.

사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일종의 관음증이 생겼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어차피 하객들은 날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 실루엣 정도만 보일 뿐이다. 내가 감정을 잡으려고 눈을 감는지, 노래 부를 때 나오는 습관인지 알 길이 없다. 어차피 나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어쨌든 난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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