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다 . 신부가 보인다 . 병상에 누워 있다 . 핏기 없는 얼굴로 동신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다 . 이번엔 병원 복도다 . 신랑도 보인다 . 신랑은 동료 의사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진료실로 들어가 진료를 준비한다 . 곧이어 간호사가 환자 한 명을 데리고 들어온다 . 신랑은 몇 가지 질문을 하며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 간호사가 먼저 나간다 . 신랑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에게 다가간다 . 환자도 일어난다 . 서로 끌어안는다 . 신랑의 가운엔 신경외과의 김태혁이란 이름과 명인병원 로고가 새겨져 있다 . 이거 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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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
눈을 떴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었다. 두 사람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채 립싱크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목걸이 펜던트가 만져진다. 내가 눈 감고 봤던 장면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두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노래 가사와도.
역시 씁쓸하겠군.
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예식홀 앞에 있던 주현이가 날 찾았다.
“오늘 정말 고맙다. 네 덕에 나도 살았어. 선배도 분명히 고맙다고 했을 거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미안. 속이 좀 안 좋네. 다음 주에 너 괜찮을 때 보자.”
난 봐선 안 될 걸 봤고 다른 사람한테 들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실수로라도 말을 흘릴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까지 거짓으로 둘러댔다.
“그래, 그럼. 어차피 축가비도 줘야 하니까 다음 주에 내가 연락할게. 그때 봐. 너무 안 좋으면 약 챙겨 먹고.”
“그런데…….”
난 무심결에 궁금한 걸 물어보려다 다음 말을 먹었다. 멈춰서 다행이다.
“왜? 뭐?”
주현이는 끊긴 말을 종용했다.
“아니야. 다음에 얘기하자.”
신랑 김태혁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했다.
다음 주 화요일 저녁 8시, 주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만나자고. 장소는 우리 집 근처 카페로 잡았다. 주현이 병원과 우리 집이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둘이 만날 때는 주로 우리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주현이는 요즘 전공의 시험 준비 때문에 바쁘다며 점심시간에 잠깐 만나자고 했다. 매번 약속 시간마다 늦는 주현이가 오늘은 웬일인지 나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야. 웬일이야? 이주현이 먼저 와 있고.”
“그냥.”
주현이는 심드렁하게 피식 웃은 뒤 자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주현이가 이렇게 진지한 태도를 보인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돼 물었다.
“왜 그래? 딴 사람처럼. 무슨 일 있어?”
“일단 이거부터 받고.” 주현이가 나한테 하얀 봉투를 건넸다.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축가비? 고마워.”
난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굳어 있는 주현이의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대화 주제를 다른 데서 가져와 편안한 대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 궁금하기도 했던 지난주 결혼식에 관해 물었다.
“지난주 내가 축가 불러준 너희 병원 선배 말야, 지금 신혼여행 중이겠네?”
주현이가 갑자기 눈에 번뜩 날을 세웠다.
“그 새낀 인간도 아니야! 나도 너한테 축가 부탁하는 게 아니었어.”
주현이는 거의 다 마셔서 얼음이 바닥에 깔린 플라스틱 컵을 집어 들고 얼음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얼음을 와드득 깨물었다. 얼음을 다 삼킨 뒤 주현이가 말을 이었다.
“야, 자기 뒷바라지한 약혼녀를 두고 어떻게 지 환자랑 바람을 필 수 있냐? 그것도 결혼식 당일까지. 그 인간 신혼여행은 여름으로 미루자 해 놓고, 결혼식 날 호텔에다 방 2개 잡아 놓은 다음, 바람난 여자랑 신부랑 번갈아 가며 보냈다더라.”
축가를 부르면서 본 장면이 있어서 주현이의 말을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그래서 신랑 신부는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그날 밤에 뽀록나서 바로 파혼했지. 그런데 그 개새끼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평소하고 똑같아! 철면피 같은 새끼! 그런 게 학교 선배라니⋯⋯.”
“신부는?”
“다른 병원에 있는 의대 동기한테 들었는데, 그 아가씨는 며칠 전 갑상선암으로 수술했다더라고. 징후도 잘 안 나타나는 암인데 결혼으로 스트레스 받아서 병원 갔다가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완치율 높은 암이라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어쨌든 지금은 입원 중인가 봐. 나도 그 정도까지만 알아. 그런데 꼬치꼬치 캐묻는 거 보니 너 이번에도 봤구나?”
난 대답 대신 왼손으로 목 아래를 더듬었었다. 목걸이 펜던트가 만져졌다. 이제 곧 약속한 20년이다. 이 목걸이를 나한테 맡기고 돌아가신 김진수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노래 부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20년 동안 목걸이를 잘 보관해 달라고. 그러면 큰 행운이 올 거라고. 행운? 행운은 무슨…….
19년 전 7살 꼬맹이는 아저씨를 믿었고, 좋은 일과 행운이 있을 거라는 말에 무턱대고 목걸이를 받았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는데 아무 의심 없이 그냥 넙죽 받다니. 목걸이를 받으면서 그때 내가 지불한 건 고맙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아저씨가 내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당연히 목걸이는 공짜가 아니었다. 금전적인 대가를 건넨 건 아니었지만, 난 그보다 더한 상실을 겪었고 불안으로 치우친 날들을 버텨야 했다. 소소한 재미와 흥분이 따라오긴 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고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었다. 사람이란 취한 것보다 잃은 것을 더 오래, 더 선명히 기억하는 존재다. 그래서 난 목걸이가 나한테 행운보다는 불행을 가져다줬다 생각하고 있다.
목걸이를 버릴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목걸이를 통해 남의 불행을 보게 될 때마다 ‘이 따위 물건 개나 줘 버려.’하고 던지려 했다. 하지만 나는 목걸이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아직 20년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에 올 행운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기대가 됐다. 또 축가를 부를 때마다 환영으로 나타나는, 신랑 신부의 미래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유언이 된 아저씨의 부탁이 내 마음을 누그러뜨려 손아귀를 움켜쥐게 했다.
사람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일을 알고 싶어 한다. 특히 앞으로 벌어질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는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법이다. 장밋빛이든 잿빛이든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과 함께했다. 누군가가 미래를 예언하고 그게 실현되면, 사람들은 그에게 근거를 따지지 않는다. 정확도가 높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의 예언이란 어차피 구체적이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 비해 운명을 점지해 준 이가 한 말이 조금이라도 맞아떨어지면, 그 사람은 이미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소문난다.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권력이나 돈을 줘가며 자신의 미래를 봐 달라고 부탁해 왔다. 고대 제정일치 사회의 무녀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에도 신기가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 개인의 대소사부터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까지 묻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사주팔자, 점, 손금, 관상, 별자리, 타로처럼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앞날을 점치는가 하면, 컴퓨터 과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빅데이터로 상황을 예측한다고 뉴스에서까지 호들갑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걸까? 미래를 앎으로써 자신이 알게 된 미래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데.
19년 전, 난 판도라의 상자 같은 능력을 원치 않게 갖게 됐다. 그 능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신랑 신부의 미래를 보더라도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았다. 단지 김진수 아저씨가 내게 맡긴 목걸이를 의무감에 보관하려고 했고, 그때 아저씨의 말처럼 목걸이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길 기대하며 내년이 오길 기다렸을 뿐이다.
주현이도 나도 대화를 오래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난 나대로 심각했고, 주현이는 어떤 인간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피로 누적 때문인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내가 먼저 다른 일이 있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일어나자 주현이도 따라 일어섰다. 헤어지기 전 카페 입구에서 악수하다 주현이가 물었다.
“참, 오늘이 어머님, 아버님 기일이지?”
“응.”
“미안해. 올해도 못 갈 것 같애.”
“미안하긴, 기억해 주고 그동안 함께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앞으론 신경 쓰지 마.”
주현이는 기제사부터 매년 우리 부모님 제사에 함께 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고맙고 미안했다. 광주에서 함께 서울로 올라온 사이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녀석에게는 항상 마음의 빚 같은 걸 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녀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좀처럼 그 기회란 게 잘 나지 않아서 문제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주현이만큼은 곁에 두고 싶은 고마운 친구로 여겼는지 모른다.
헤어지는 의식을 마저 마무리하듯 주현이는 내 등을 톡톡 두 번 두드렸다. 그렇게 인사를 마무리 지은 뒤 우린 제법 청명해진, 가을 냄새가 깔린 거리 속을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