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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타공인 국민MC로 유명한 유재석 씨는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자신의 암울했던 20대를 노래로 불러 청년들의 가슴을 눈물로 적시고 그들의 마음에 가능성과 희망의 불을 지핀 적이 있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면 다음 날은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막막함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길 여러 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깨달음' 덕분에 말하는 대로 해낼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노래로 불렀다.

그와 반대로 나는 20대 후반까지 정말 온실 속 화초처럼 평이한 삶을 살았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들어갔고,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나선 한 달도 되지 않아 직장에 취직했다. 취직 후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 배필을 만나 결혼했고, 예쁜 딸 아이를 얻었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고통과 행복을 넘나드는 삶의 굴곡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생의 경로에 있어선 큰 장애물 같은 걸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게 행운의 여신이 지속적으로 윙크를 날려준 덕택이기도 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겐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든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난 몇 살 때까지 OO을 이룰 거야" 같은 삶의 목표나 의지 같은 걸 굳지 생각하며 살지 않았었다. 지금도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 땐 정말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았다.

유재석 씨가 20대에 느낀 것보다는 다분히 여유 넘치는 고민이지만 나는 30대에 접어들 무렵 그와 비슷한 고민과 불안에 시달렸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가?', '지금처럼 살면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에는 어떻게 되지?', '만약 이 길이 아니라면 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 건가?' 같은 고민들.

'말하는 대로'에서는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유재석이란 사람을 변화시켰다고 했는데, 난 깨달음의 경지까지는 못 이르렀지만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불안에서 벗어난 것 같다.


이 책은 2005년에 먼저 나왔고, 201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내가 만약 내 삶과 진로에 불안을 느끼고 고통에 시달리던 그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아마 나는 좀 더 내가 붙들고자 했던 것들을 쉬이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의 지위,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지위'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와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이 부분은 위키백과에 '지위'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얻은 글 같다. 필요한 말만 딱 간추려놓아서 이런 형식의 글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어쩌면 연구자가 논문을 쓸 때 조작적 정의를 갖춰놓고 쓴 듯한 느낌이랄까?

두 번째는 '원인'이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 불안의 원인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마다 불안을 느끼는 상황은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그 지위란 명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권력이나 경제적인 지위일 수도 있다. 또 사회적 상황에서 느끼는 발탈감도 보통 사람보다 못한 지위에서 오는 불안으로 작용한다. 그 때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나열해 놓았는데, 나는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지위로 인한 불안이 거의 모든 상황을 포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 번째는 '해법'이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5가지 방법,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보긴 어렵다. 그래서 소제목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삶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철학 서적이나 수필로 보는 편이 낫다. 구글이나 네이버에 저자를 검색하면 그는 철학가나 소설가로 소개된다. 그래서 이 책에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가 각각 불안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지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가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현 사회에서 지배적인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름의 지위로 위계를 세운다'라고 짧게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큰 생각을 초라한 한 문장으로 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책의 본문 마지막 내용을 여기에 실어보려고 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 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대가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세대마다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들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도움을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10여년 전 소심하게 방황하던 나와 마주했다. 지금은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속도에 맞춰 행복을 찾고 있다는 안도감에 당시의 나를 위로한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조금만 더 여유로웠더라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더 깊이 새겼었다면, 앞만 볼 것이 아니라 옆과 뒤도 돌아보았더라면 그리고 나만의 가치를 찾아 움직였다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빨리 만났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마치 도를 통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오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질투하고 불안해 한다. 대신 금세 '그건 내 길이 아니잖아'하고 나를 다독일 용기가 생겼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막을 수 있어 난 덜 불안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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