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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대부분은 걸리버 여행기를 접해 봤을 것이다. 

책으로 읽었든, 어린이 TV 프로그램에서 해 주는 짧은 인형극으로 봤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는 걸리버 여행기를 경험했다.

나도 그랬다. 

걸리버가 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다가 그 배가 난파되어 어느 미지의 섬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마침 그곳은 아주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이었고, 그곳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판타지' 소설이 걸리버 여행기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잭 블랙이 주연한 영화 '걸리버 여행기'도 소인국 관련 내용만 나왔을까?

 

 

그런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걸리버 여행기를 언급한 부분을 읽게 됐고, 거기서 천공의 성 '라퓨타'를 언급하는 걸 보고 내가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침 도서관 한 구석에 걸리버 여행기 완역본이 시간과 싸우고 있는 걸 봤던 기억이 나서 책을 빌려 읽게 됐다.

 

일단 내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는 크게 걸리버의 소인국과 대인국에서의 경험이었다. 참고로 우리 딸이 내가 걸리거 여행기를 읽는 걸 보고 자기도 어린이용 걸리버 여행기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그 책에서 소인국과 대인국까지의 내용만 나왔다. 아마 나도 어렸을 때 거기까지만 번역되고 편집된 책을 읽었던 듯 하다. 그런 프레임에 갇혀 있었으니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가 걸리버 여행기의 전부라고 기억했을 수밖에.

 

완역본 표지에도 쓰여 있지만 큰 글씨로 '무삭제 완역!'을 강조하고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왜 이 책을 신성모독적이라고 평가하였는가? 왜 이 책을 금서로 취급하고 저자를 야유를 퍼부었을까? 왜 이 책을 마음대로 삭제하여 아동용 도서로 왜곡하였는가? 왜 이 책의 4부를 누구도 읽어선 안 된다는 딱지를 붙였는가?'라는 물음들로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이 책과 저자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었는지 또 지금 당신이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이 책은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었다.

당시 영국과 유럽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풍자 소설이었다고 한다. 저자 또한 신랄한 풍자, 특히 말(휴이넘)보다 못한 인간들의 비리와 비윤리적 행동을 비꼬는 내용을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냈을 경우 문제가 될 걸 생각해서 우편으로 비밀리에 책을 냈다고 나온다. 

 

걸리버 여행기는 크게 '제1부 작은 사람들의 나라-릴리퍼트 기행, 제2부 큰 사람들의 나라-브롭딩낵 기행, 제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라퓨타, 발니바르비, 럭낵, 글럽덥그립, 일본 등의 나라 기행, 제4부 말들의 나라-휴이넘 기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는 자신이 살았던 당시 영국 사회의 정치적 모순을 꼬집고자 여행기 형식의 소설로 각 나라에서 보고 들은 내용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 내용들이란 영국이 고집하고 있는 제도와 문화를 이러한데, 자신이 머무는 곳의 국왕과 학자들은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식으로 대화를 정리한 것들이다.

 

특히 4부 휴이넘 기행은 풍자와 비판의 끝판왕이다. 

인간을 닮은 야만족 '야후'와 그들의 주인인 말 형상의 종족 '휴이넘'이 나온다. 책을 읽는 동안 의아했던 것은 저자가 말을 너무 고결한 존재로 보고 그들의 언어와 대화를 고차원적인 이성을 산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말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인간의 배신, 사기, 다툼, 이기심, 야만성, 폭력성 등이 말보다 못함을 빗대기 위해 휴이넘을 찬양했을 것이다. 

말들의 나라에서 돌아온 걸리버는 계속 휴이넘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마굿간에서 말들을 보살피면서 말들을 극진히 대접한다. 요즘 말로 웃픈 일 아닐까? 인간 사회에 염증을 느낀 그가 노년을 보내기엔 그 방법밖엔 없었을까?

 

걸리버 여행기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재미와 감동 면에서는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이야기 구성에 큰 긴장감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3부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소인국이나 거인국 같은 소재는 당시나 지금이나 재미있는 소재임엔 틀림 없다. 소재의 특이성이 재미있는 소설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리버 여행기가 300년 가까이 읽히고 있는 건 아무래도 소재의 특이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 자신이 의도했던 본래의 목적이 영국 사회의 풍자였을진 모르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흥부전만큼이나 걸리버 여행기가 알려진 건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인 소인국과 거인국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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