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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딱히 좋아하는 작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종교적 색채가 곳곳에 드러나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야 뭐 작가와 같은 종교이기도 하니 크게 거리낌은 없다. 그래도 읽고 나면 가슴 한 구석에 뭔가 구멍이 뚫린 듯하면서 그 안에서 형체를 정형화시키기 어려운, 뭔가 붙잡을 수 없는 메아리 같은 울림으로 나를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가 그의 소설들이다. 이번에 다시 읽은 <연금술사>도 그랬다.

같은 책도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와 의미의 맛을 다르게 느낀다는데, 내 경우엔 이 책이 그랬다. 이번까지 이 책을 세 번 읽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나이 앞 자리 숫자가 달랐다. 

20대에 읽은 <연금술사>는 재미있는 모험과 환타지가 가미된 이야기였다. 이때는 '오, 흥미롭네. 그래, 누구나 꿈이 있지'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그때 난 아직 어렸으니까. 무엇이든 생각한 건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였다. 젊었고 그에 따른 체력과 의지가 있었다. 또 거리낄 것도 없었지. 젊음의 특징이자 장점은 책을 읽은 나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 속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결국 자아의 신화를 이룩한 것 같은 결과를 당연히 내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서서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젊음을 세상에 내 주었다. 하지만 이때도 아직 조금만 노력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30대에 읽은 <연금술사>는 자신의 꿈을 잃지 말고 정진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그렇다, 꿈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 30대, 젊다고 하면 젊은 나이고 노련하다면 노련하다고 할 수 있는 사역마로서 나는 내가 들어선 길에 길들여져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 이것저것 재면서 내 상황과 미래에 조금 더 낫다고 여길만한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일이 싫은 건 아니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다들 열심히 일에 몰두했고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하루, 한달, 일년이 반복됐다. 산티아고가 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털 가게에서 열과 성을 다해 업무 실적을 올렸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산티아고는 분명 크리스털 가게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서 뿌듯함을 느꼈을 터다. 하지만 그건 그가 꾼 꿈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내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굴이 누렇게 뜨다 못해 낯빛에 그늘이 질 때까지, 누적된 피로가 속을 갉아 먹을 때까지 난 깨닫지 못 했다. 나한테도 꿈이 있었다는 걸. 누구나 꿈을 꾼다. 특히 어릴 땐 그 꿈이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세상 풍파를 겪으며 의지와 함께 내 꿈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다. 그리곤 꿈이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모두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그저 목적도 없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 근육이 단련된 사역마로서 나는 어느덧 각성을 하게 된다.   

40대인 현재 <연금술사>를 읽고선 더 늦기 전에 내 '자아의 신화'를 이루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계를 위해 꿈을 놓고 일만 하다 '이제야 보물이 숨겨진 장소가 떠올랐어'라며 뇌리에 스친 희미한 옛 기억의 단서를 찾아 길을 떠나는 전직 모험가 같은 삶. 그 삶이 내가 최근 몇 년 간 깨우친 삶의 이유였다. 하지만 산티아고가 오아이스나 파티마를 남겨둔 채 사막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과 달리 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부분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 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선 절실하게 염원해야 하는데, 안정된 삶에 몸과 마음을 맡겨둔 지 오래다 보니 절여진 오이지처럼 내 꿈은 원래의 형체는 온데 간데 없고 흐물거리는 모양새로 본래의 정체성을 의심 받고 있다. 하지만 절여진 오이지도 다시 물을 많이 머금으면 어느 정도 탄력도 생기고 안에 들어온 소금기도 빠져나가게 되는 것처럼 나도 내 꿈이 선명해지도록 정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연금술사>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참 매력적인 책이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나온 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연료인 되는 꿈을 잊지 않게 만드는 최고의 인생 지침서였다. 게다가 너무 일반적이라 유치해 보일 수 있는 '꿈'이란 말 대신 '자아의 신화'라는 이름으로 대체한 것도 마음에 든다. 한 사람의 삶을 '신화'로도 볼 수 있다는 관점 자체도 경이롭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의 삶도 경이롭다. 

문제는 결국 나다. 난 현실에 안주한 채 꿈을 잊고 살 것인가, 아니면 내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살 것인가의 문제. 물론 대답은 후자다. 하지만 그 여정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기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난 이제 20대가 아니니까. 그래도 모든 일에 시작이 있듯 이제라도 시작하면 아직 시작하지 않을 때보단 먼저 한 거 아니겠나. 그러니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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