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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선설을 믿습니까? 성악설을 믿습니까? 아니면 백지설을 믿습니까?

살면서 한 번씩 들어봤거나 생각해 본 물음들일 거다.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대방을 대할 때마다 입장을 번복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이 의미 없었음을 생각하게 됐다. 

.

약간 판타지 소설 같은 제목의 이 책도 파울로 코엘료 행님께서 무려 20여 년 전에 출간하신 책이다. 그 동안 이 책을 몰랐던 건 내가 20대 때는 책을 별로 안 좋아했다는 슬픈 과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이 책을 보게 된 건 코로나19로 도서관이 문을 닫았고 동생이 사서 쌓아놓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내용은 추리 소설이나 만화 명탐정 코난 같은 문제 해결형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 만하다. 나 또한 그런 부류다. 그런데 이 책의 진정한 맛은 이방인과 미스 프랭(샹탈)의 대결구도나 금괴가 누구한테 갈 것인지에 있지 않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처음에 던진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대신 해 준다는 데서 난 이 책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인간 본성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베스코스가 비록 지금은 쇠락한 마을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영화롭고 지혜롭던 시절이 있었죠. 내가 그걸 기억하기만 했어도 진작 당신이 찾던 답변을 줄 수도 있었어요."
(중략)
"그걸 지금 말해줄 수 있겠소?"
"성 사뱅과 아합의 만남에 대해서는 이미 누군가에게 들어셨겠죠?"
"물론이오. 성인이 찾아와 그 아랍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고, 그 아랍인은 성인의 용기가 자신의 용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고는 결국 개종했다고 들었소."
"맞아요. 하지만 성인이 찾아왔을 때부터, 그리고 그들이 대화하는 내내 아합이 쉴새없이 칼을 갈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해요. 그럼에도 사뱅은 편안하게 잠을 잤죠. 세상이 자기 자신의 반영이라고 확신한 아합은 성인에게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물었어요.
'만약 여기에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녀가 갑자기 들어온다면, 그녀가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성인은 대답했어요.
'아니오. 하지만 나 자신을 통제할 수는 있을 거요.'
'내가 엄청난 양의 금화를 주며 산을 떠나 우리와 함께 지내자고 제의한다 해도 그 금화들을 자갈 보듯 바라볼 수 있겠소?'
'아니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거요.'
'두 사람이 당신을 만나러 왓는데, 한 사람은 당신을 경멸하고, 또 한 사람은 당신을 성인으로 우러러 받든다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겠소?'
'힘들긴 하겠지만, 나 자신을 통제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 거요.'"
샹탈은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람들은 이 대화가 아합을 개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들 해요."
샹탈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방인은 이야기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뱅과 아합은 똑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선과 악은, 지상의 모든 영혼을 정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듯이 사뱅과 아합을 정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아합은 사뱅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기 역시 사뱅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이 통제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문제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
(P. 243-245)

 

요즘은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내용을 담을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며 책을 읽게 된다. 특히나 인생에서 겪게 되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 형식을 빌려 쓴 작품들은 읽고 나서 감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가를 존경하게 된다. 부럽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이런 내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 강의를 해 주신 분의 설명에 난 전적으로 동의한다. <악마와 미스 프랭>에서는 통제와 선택의 문제라고 했지만 통제와 선택도 개인의 의지와 인지능력이 반영되었음에 틀림없다. 모두가 한 번씩 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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