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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라고 불리는 도서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명작들만의 모아 교집합을 찾아낸다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그들 모두가 독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 10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이라면 더더욱.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책이었다. 

워낙 명작이다보니 영화로도 각색된 적이 있는데, 아직 영화로는 보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작년에 처음 읽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각각 출판사가 달라서 느낌이 달랐다. 작년엔 문학동네 출판서에서 김영하 작가가 번역한 걸로 읽었고, 이번엔 새움 출판사에서 이정서 번역가가 번역한 책이다. 쉽게 읽히는 건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었다. 이정서 번역가는 작가가 쓴 원문의 서술 구조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일까, 주석을 달아주긴 했지만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두 책을 비교하면서 읽다보니 (요즘 원서 읽기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원서를 번역할 때의 재미(?)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책 제목에서부터 궁금해 한다. 왜 위대한 개츠비일까? 밀주사업으로 부자가 되어 궁전 같은 자기 집에서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개츠비. 부자라서 위대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거다. 글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경제적 부흥기 미국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부(富) 말고 한 사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도구엔 뭐가 있을까? 성공이란 걸 외부에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폐일 수 있겠지만, 우리는 흔히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성공 여부를 가를 때 재산을 그 도구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의 대상이 부자가 된 개츠비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대한 것일까? 난 그 대답을 이 책의 마지막에서 찾았다.

개츠비는 녹색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가치를 잃어 가는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것은 그때 우리를 피해 갔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ㅡ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좋은 아침ㅡ
그리하여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녹색 불빛은 개츠비가 유일하게 사랑한 데이지의 집이다. 혹은 달러를 상징하는 색깔인 돈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 경우도 정말 돈을 사랑한 건 데이지였으므로 둘 다 데이지를 상징한다고 봐도 괜찮겠다. 어쨌든 개츠비는 데이지를 상징하는 녹색 불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데이지와 이루어지지 못 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한 남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금 내 것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가는 모습, 그 모습 자체가 위대한 것이다. 목표를 향해 한 발씩 내딛고 결국 이루어내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위대한 것이라는 데서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에서 사실 나한테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개츠비가 아니다. 이야기를 말해주는 닉 캐러웨이다. 속물 같은 사람들 속에서 제정신을 갖추고 마지막까지 개츠비 옆에 있어주고 개츠비를 사교계의 거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이자 순수한 인물로 봐 준 이가 닉이기 때문이다. 개츠비에 대해 아무도 정확한 정보도 모른채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 모두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다. 단 한 사람, 개츠비의 책방에서 길을 잃고 개츠비에게 전시용이 아닌 진짜 책이 있다고 말한 올빼미 안경을 쓴 남자만 참석한다. 그가 책에 등장한 이유도 어쩌면 다른 속물들과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일 수 있다.

닉이 비교적 주변 인물인 조던 베이커와 나중에 나누는 대화가 '어른', 즉 사리분별이 되는 삶을 사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어 한 구절 남긴다. 

"나는 서른입니다." 내가 말했다.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명예라고 여기기에는 다섯 살이나 훨씬 더 먹어 버린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보면 와타나베와 친구가 되는 나가사와가 이런 말을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아직 그들과 친구가 될 수준이 안 된다. 아직 두 번밖에 읽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한 번은 더 읽어야 나가사와가 날 친구로 받아주렜지. 그땐 이 소설에서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와타나베나 나가사와가 나하고도 대화할 맛을 느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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