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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무슨 내용일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출간 된 지도 꽤 오래 되었고(구글 검색 결과 최초 발행일 1990년, 국내에는 2010년 문학동네에서 출간), 소재도 마법, 달 전승이니 태양 전승이니 하는 내용으로 평범하진 않다. 오래된 책인데다 소재만 놓고 보면 내가 찾아 읽을 책은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때문에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선택권이 얼마 없어서 읽게 된 책이다.

 

소설의 배경은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브리다라는 21살짜리 여자가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법이라고?' 여기서 이 책은 환타지 소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덮으려고 하다가 (사실 중간에 읽기를 중단했었다.) 그냥 계속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오묘하다"라는 한 마디를 뱉을 것 같다. 배경은 로마 카톨릭이 자리잡은 아일랜든데, 내용은 여러 미신과 불교의 윤회 사상이 뒤섞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각 사물마다 정령이 숨어 있다든가 마녀로 거듭나기 위한 입문식, 타로카드, 다른 시대에서 살았던 자신의 삶으로의 시간 여행 등 현실 보통 현실 세계에서 접하는 내용들은 아니다. 그런데 또 그 모든 내용의 밑바탕엔 성서에 대한 내용이 깔려 있다. 정말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이렇게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소재들로 만든 책을 왜 내가 끝까지 읽고 글까지 남길까?(이건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을 나에게 는 물음이다.)

그건 이 책이 마법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과 성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브리다라는 20대 초반 아가씨가 세상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은 부분을 연결하는 '마법'을 배우면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 앞에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소심함을 스스로 극복하게 된다.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통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인생에서 스스로 고난이라고 여기는 여러 문제들 앞에 서게 된다. 그때마다 잘 이겨내고(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깐의 힘듦과 지레짐작한 고통을 못 이겨 회피하거나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 난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봤다. 난 후자에 가깝다. 오히려 내 인생은 너무 수월하게 풀려서 남들이 안주거리이자 무용담처럼 말하는 인생의 쓴 맛 같은 경험도 거의 없다. '평탄한 인생이 좋은 거지.'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패와 시련이 있어야 발전도 있다는 부분을 읽는 동안 난 뺨을 세차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답은 책 내용 인용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브리다가 물었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그러면 삶은 훨씬 강렬해지고 환희로 가득 차게 돼. 삶의 매 순간순간에, 우리가 내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우리 개인을 넘어서는 훨씬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지. 우리는 시간과 공간 어딘가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것으로 족해.
우리는 믿음을 갖고 어두운 밤 속으로 침잠하고, 고대 연금술사들이 '자아의 신화'라 부르는 것을 완수하고, 우리가 받아들이든 말든 늘 우리를 이끌어주는 손이 있음을 믿고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거지."
(P. 231-232)

 

그리고 이 책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 무소유.

순간적인 감정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놓아 줄 것.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포함해 순간적인 환희를 소유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심한 경우 상대를 속박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너 내 꺼"라는 식의 소유욕을 드러내고 만다. 하지만 소유는 선택과 후회를 낳는다. 놓아주고 바라볼 때 영원한 아름다움을 곁에서 보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깨달음이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본 저녁노을과 같은 것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어." 마법사는 말을 이었다.  "비가 창문으 두드리며 내리는 오후를, 잠든 아이의 평온함을,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소유할 수 없듯이. 아무도 대지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없지만, 그것을 알고 사랑할 수는 있다. 신께서 인간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순간들을 통해서지. 
우리는 태양의 주인도, 오후의 주인도, 파도의 주인도, 심지어 신께서 보여주시는 환영의 주인도 될 수 없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야." 
(P. 345-346)

"꽃 속에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선물해. 꽃을 소유하려는 자는 결국 그 아름다움이 시드는 것을 보게 될 거야. 하지만 들판에 핀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원히 그 꽃과 함께 하지. 꽃은 오후와 저녁노을과 젖은 흙냄새와 지평선 위의 구름의 한 부분을 담고 있기 때문이야." (중략)
"숲이 내게 가르쳐주었어. 당신이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야 당신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고독했던 시절에는 희망이었고, 의심했던 순간들에는 고통이었고, 믿음의 순간에는 확신이었어.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언젠가 내 소울메이트가 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태양 전승을 배우는 데 전념할 수 있었어. 내 존재를 지탱시켜준 것은 당신 존재에 대한 확신뿐이었어."
(P. 346-347)

브리다는 마녀로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장을 도운 마법사도 한 단계 성장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결합하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였던 마법사는 마침내 그렇기 기다리던 소울메이트인 브리다를 만났지만 그녀를 놓아준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성장했다고 말한다. 

옛날 드라마 대사에 자주 등장했던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요"가 결과적으론 같은 의미일까? 아니겠지만 마법사는 브리다를 그런 이유로 놓아준다. 

 

읽을 때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다 읽고 나선 묵직한 한 방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예전엔 스토리가 재미있는 소설이 좋았는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만드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소 뒷걸음치다 만난 소설이지만 이 책 나름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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