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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와 우연히 카페에서 책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친구가 뭘 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당시엔 얘기를 많이 나누긴 했다. 그 당시 나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그 친구에게 소개했고, 그 친구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책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진 못 했다. 샐린저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들어봤고 서명에 관해서도 익히 들어봤지만, 읽어본 적이 없었고 줄거리조차도 몰랐다. 상대가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하면서까지 추천을 하니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 미룬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다. 얼마 전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이 있어서 빌렸는데, 기다린(?) 시간에 비해 글쎄...

감상평을 간단히 말하면, 요즘 말로 '중2병에 심하게 걸린 사춘기 소년의 일기 혹은 무용담'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크리스마스 즈음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 처리가 되고 그전에 자기 발로 (기숙)학교를 탈출하면서 생겼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작가는 여기서 사건의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형에게 전하는 얘기를 다시 한 번 밝힌다며 이야기의 처음과 끝부분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독자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느끼게 된다지.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가 배경이다. 홀든의 형인 D.B가 전쟁에도 참여했다는 걸로 봐선 1차 세계 대전은 끝났던 것 같고, 그러면 세계 대공황이 딛고 일어선 부국 미국 상황이다. 역사에, 특히 세계사에 약한 나 같은 사람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괜찮다. 깊숙이는 몰라도 주인공의 상황만 보면 이 자가 어떤 인물인지 추측할 수 있으니까. 자유주의 미국에 부가 형성되는 시기, 홀든의 가족은 중산층 이상의 위치에 있다. 아버지는 잘 나가는 회사 고문 변호사이고 자식들을 기숙형 사립학교(우리나라로 치면 자립형 사립고)에 보낼 정도니까. 게다가 번번히 학교에서 퇴학 당하는 둘째 아들을 새로이 다른 학교로 입학시킨다. 이 정도만 봐도 현재 우리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홀든이 어느 정도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는지 알 수 있다. 

홀든의 형은 유명 작가다. 소설로 인지도를 얻었고, 1900년도 초 미국 엔터테이먼트 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헐리우드로 진출했다. 한 마디로 엄친아라고 할 수 있다. 동생인 홀든은 그런 형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못 마땅해 하고 있다. 소설가로서는 인정하면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뜩치 않은 것이다. 당시 대중 예술인 영화를 속물주의라 생각해서였을까. 형뿐 아니라 동생에 대한 홀든의 평가는 예찬론적이다. 동생 피비와 앨리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말도 잘 한다고 평가한다.

반면 자기는 영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를 하는 부적응아지만 꿀릴 게 없는 인물로 자평한다. 영화나 연극뿐 아니라 바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까지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 모두 자기 기준엔 저급하다. 그리고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인물 대부분 자기 성에 안 찬다. 몇몇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을 갖췄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흠을 찾기 일쑤다. 특히 여자들에 대해선 비하하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하지만 지금 같아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주인공 홀든을 보면, 전형적인 요즘 중2병 걸린 사춘기 학생 같다. 충동적인 말과 행동, 과장된 표현, 저 잘난 맛에 사는 반항아, 몸뚱이는 컸지만 정신은 성숙하지 못한 채로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미성년. 책을 읽으면서 홀든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공감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춘기 소년들은 비슷하다.' 그 부분을 작가가 잘 포착해서 사춘기 소년 같은 말투와 생각으로 나열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에 고전으로 칭송받는 것일 수도 있고, 나한테 이 책을 추천해 준 이도 그 부분에 끌렸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홀든과 대화하는 선생님이 두 명 나온다. 펜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스펜서 선생님과 현재는 뉴욕 대학에서 영어 교수이지만 엘크톤 힐즈(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 주었던 앤톨리니 선생님. 내가 다른 인물들보다 선생인 두 사람에게 관심을 둔 건 내 직업과 관련이 없지 않다. 내가 느낀 바로 홀든은 그 두 인물을 각각 '꼰대'와 '어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스펜서 선생님은 늙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 하는 가엾은 할아버지지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서 이내 간 걸 후회한다. 계속 잔소리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귓바퀴에서 튕겨 나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와 상대가 저지른 일에 대한 비난과도 같은 평가 말이다. 누구들 그런 얘길 듣고 좋아하겠나. 

반면 앤톨리니 선생은 홀든을 친구 대하듯 하며, 진정어린 조언을 한다. 학교를 나온 홀든에게 지금은 네 생각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건설적인 시각에서 얘기를 해 준다. 심지어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홀든이 선생의 얘기를 듣는 중에 하품을 해 버렸는데, 그때도 빈정 상해하지 않고 자라고 말해 준다. 모든 교사가 앤톨리니 선생 같다면 학생들이 그 선생에게 상담을 받으려고 달려들겠지만, 내가 아는 현실에선 소설 같은 상황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랄까. 그래도 소설의 치유적 기능 때문에 읽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어 공유해 본다.

중2병의 특징이자 자기 감정에 매몰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걱정을 안고 있으며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을 거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거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산 사람이든 현재를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든 내가 해 본 걱정과 고민을 다들 해 봤다는 거다. 그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알게 된 바를 전해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이 고귀한 인간 진화의 과정을 사춘기 소년이 금새 깨닫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춘기라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잠잠해 지는 시기를 겪어야만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난 앤톨리니 선생의 말이 와 닿았다.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더라도 건질 건 분명히 있었던 소설이다. 내가 감히 대작가의 글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선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니까 내 취향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대신 앞에서 말했든 중2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꼭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매년 청소년 필독 도서로 꼽히는 <데미안>만큼이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마음 속에서 파란이 일어나는 책이라 생각한다. <데미안>이 묵직한 큰 물결이라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잔잔하지만 그 진폭이 잦아 나오는 사건마다 독자에게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근래엔 책으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사람 만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내 주변에서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로 책 읽은 소회를 남겨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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