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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후기입니다

특정하고 생각해서일까? 2023년에는 달의 추락 혹은 천체의 이상 변화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종종 나왔다. 영화 ‘문폴’과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이 대표적이다. 두 영화 모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범지구적 차원의 문제, 그러니까 다른 천체가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달의 아이’를 읽는 내내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가 계속 떠올랐다. 물론 내용도 다르고 결도 달랐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가 떠올랐다는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의 본업은 드라마 PD다. <추리의 여왕2>, <김과장>, <정도전>, <즐거운 나의 집> 등을 연출했다는데,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선 <김과장> 정도만 알고 있다. 내가 TV를 즐겨보든 안 보든 그와 상관없이 작가의 필력엔 그의 직업적 능력이 발휘된 듯하다. 최소 16부작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할 때는 드라마 작가의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맛있게 엮고 편집할 수 있는 PD의 연출 역량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소설에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인물을 한 두 명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각각의 갈등 요소를 만들어낸다. 그런 면은 드라마 연출자로서 다년 간 현장에서 일해 본 작가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았을까. 그런 연유로 독자로서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구체적인 상황과 장면 묘사는 없었더라도) 머릿속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중학교 과학 시간에 달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모두 배워서 알고 있다. 하지만 달의 인력이 강해져 어린 아이들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은 누가 해 봤을까.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도 그런 상상까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천변을 걷다가 언덕 위에서 나란히 서서 보름달을 보고 있는 한 가족을 보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평화롭고 단란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에서 어떻게 이런 재난 상황을 생각해 냈을까.

이 소설은 재난 위기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가족 드라마가 숨어 있다. 딸 수진이를 잃어버린 정아와 상혁, 어린 시절 출세를 위해 아들을 버리고 국무총리가 된 운택과 그의 아들 해준, 또 수진이처럼 에비에이션한 해준의 아들 윤재와 해준의 가족. 이들은 달이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 문제에 놓인다. 그리고 그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예전부터 상황이 이리 되리라는 걸 짐작하고 벙커를 만들어 둔 운택, 딸 수진이는 이제 죽었으니 산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자고 말하는 상혁, 그런 상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끝까지 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 정아,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운택의 비리를 파헤치다 결국 아들의 실종 때문에 운택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며 화해하는 해준.


이 책을 읽는 동안 두 가지 재미를 느꼈다. 하나는 작가가 천재지변에 의해 가족을 잃어버리는 절망적인 사건을 겪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잘 그려주었다는 점이다. 정아와 상혁은 딸 수진이를 잃어버린 후 처음엔 불안이라는 감정를 느낀다. 며칠이 지나면서 레저럭션한 구한울이라는 아이의 생환을 통해 그들은 수진이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하지만 상혁은 마음을 접는다. 달을 향해 올라간 수진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살자고 아내를 구스른다. 숨 쉴 공기도 부족하고 태양열에 의해 타 죽든지 차가운 공기에 얼어 죽었을지 모르니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제 정아는 상혁의 태도와 안온한 정부 그리고 해준이라는 빅마우스에 의해 움직이는 에피모 의견에 분개한다. 그러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일을 그만두고 달에 핵을 쏘기로 하면서 정아는 식음을 전폐하다 마음을 편히 먹는다. 자기가 직접 에비에이션해서 수진을 만나기로.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이 소설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정아를 중심으로 이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즐거움은 운택과 해준의 숨바꼭질이다. 해준은 운택의 비밀을 파헤치려 하고, 운택은 몰래 방주 같은 시설을 준비하면서 해준과 그 가족을 들인다. 그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들이 이 소설을 추리소설처럼 느끼게 해 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운택이라는 캐릭터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들을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높은 자리로 오르기 위해 속을 숨기는 모습하며, 가족과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닌 돈 벌이 수단으로 방주를 만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함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더불어 뭔가 사건에 영향력을 줄 것 같은 인물에 대한 설명이 후반부에 부실했던 점도 아쉽다. 정아의 남편 상혁은 어떻게 되었으며, 해준은 벙커 밖으로 나간 뒤 정아를 만났을까. 그 부분에 대한 마무리가 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너무 많은 인물이 나와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운택의 비서 송 비서가 왜 해준에게 차명계좌 파일을 넘겼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맥거핀을 위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에 대한 설명과 개연성이 부족해진 점이 아쉽긴 하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요즘 재미있는 웹툰, 소설을 보면서 내가 읽은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로 제작된다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활자로 읽어서 내 머릿속에 나만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과 명배우가 나와서 실감나게 연기를 하는 장면을 보는 건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작가가 본업이 드라마 PD라는 점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더 영상화하기 용이하지 않을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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