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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 도서관

래피의 사색

왕구생각 2019. 5. 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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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거의 한 번 정도만, 그것도 5km 내외를 왕복하는 정도로 운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다 주말에 운전을 할 때면 라디오를 켜고 운전을 한다. 차 안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뭣 해서 그냥 라디오를 듣는다. 특별히 정해놓은 주파수가 있는 건 아닌데, 그냥 내 차에는 SBS 라디오가 맞춰져 있다. 그래서 오후 2~6시 사이에 '2시 탈출 컬투쇼', '붐붐 파워'를 듣곤 했다.

 

지금은 103.5Mhz 러브FM으로 옮겼지만, 예전엔 '김창렬의 올드스쿨'이 오후 4~6시에 107.7Mhz 파워FM에서 방송했었다. 그 때 코너 중에 '래피의 드라이브 뮤직'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토요일엔 흘러간 가요를, 일요일엔 흘러간 팝송을 들려주었다. 덕분에 운전하는 중간 중간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옛노래를 흥얼거리는 재미를 느꼈다. 그 방송을 통해 DJ 래피에 대해 알게 됐다. 알게 됐다곤 했지만 사실 난 DJ 래피의 얼굴도 몰랐다. 단지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흥을 돋구는 능력이 뛰어난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DJ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정보들이다.)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쨌든 특이한 예명인 'DJ 래피'를 알아서일까? 얼마전 도서관에 가서 신작들이 있는 서가에 보니 '래피'라는 이름이 눈에 띄어 책을 집어들었다. 'DJ가 책을 썼네? 그것도 음악에 관한 책도 아니고 삶에 대한 질문?' 좀 낯설고 신선했다. 엄청난 책이 양산되는 시대긴 하지만 DJ가, 그것도 음악도 아닌 삶에 대한 성찰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부분이 놀랍고 궁금해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2018년 여름이라 시간상으론 성립 가능성이 제로이지만, 만약 내가 30대 초반에 이 책을 발견했더라면 지금까지의 10년을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30대는 남들처럼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목표가 불분명했으면서도, 남들만큼 혹은 그보다 높은 명성과 지위를 갈구했었다. 내가 정한 목표와 방향이 아닌, 말 그대로 남들이 부추기는 대로 살다보니 일이 하나씩 끝나갈 때마다 해소되지 않는 누적 피로와 허무함이 내 마음을 채워갔다. 어느 날 문득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나는 잘 살고 있나? 10년, 20년이 지나고서 이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난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고민이 5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졸필이지만 글을 남기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다시 내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누가 볼 땐 '뭐 그 딴 게 소망씩이나 하냐?'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난 5년 동안 고민한 바를 실천 중이고 지금 너무나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사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내가 답을 찾는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대부분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사춘기처럼 방황하던 30대의 내가 길잡이로 삼았던 여러 책에서 찾은 보석들이 이 책에서는 짧막한 내용으로 담겨져 있다. 여러 고전의 인용과 더불어 'DJ 래피'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적절히 조합한 상태로. 

 

학창 시절은 학교에서 정해준 공부 외엔 다른 길이 없는 줄 알았다. 대학을 다닐 때도 별 생각 없이 집과 학교를 왕복했고, 사회 초년생 시절도 내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혼을 하고, 딸이 생기면서 드디어 철이 들었는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정해 보려고 끙끙대 봤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데, 개똥 철학이려니 하지 말고 진지하게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성공의 정의는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여전히 즐겁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P. 159)

나의 성공이 꼭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정성을 들인 끝에 맛보게 될 성취감, 만족감이나 기쁨 그 자체만으로 얼마든지 의미가 있다. (P. 218~220)

행복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P. 220)

자신의 작은 성공에 기뻐할 줄 알면 그것은 행복에 다가가는 쉬운 길이 될 수 있다.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변수는 선천적인 재능이나 후천적인 양육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한 일, 즉 '하고 싶은 일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 (P. 220) 

 

 

책을 다 읽고, DJ 래피에 대해 조사를 해 봤다. (처음으로 경상도 아저씨의 얼굴을 보게 됐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 보니 일단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쓴 책들이다. 2018년에만 3권의 책을 냈다. 그것도 2~4달 사이에 연속으로 책을 냈다는 점에서 크게 놀랐다. 책의 여러 글 중 '기타와 굳은 살'이라는 글에는 저자가 책을 읽기 위해 집에 TV를 내다버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적지 않은 양의 독서를 했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남겼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메모로 남든, 칼럼에 연재하는 형식이든. 읽은 양만큼 써 온 양도 많았기에 한 해에 책을 세 권이나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검색을 하다 보니 또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내가 차를 정말 자주 안 타긴 하나 보다.) '김창렬의 올드 스쿨'의 한 코너였던 'DJ 래피의 드라이브 뮤직'이 2018년부터 아예 정식 프로그램으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저자에게 축하할 일이다. 나의 축하를 직접 읽거나 듣진 못하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라도 응원한다고 전하고 싶다. 

  

 

DJ래피의 드라이브 뮤직이 완전히 분리되어 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음

 

꿈, 성공, 행복, 인간관계, 죽음, 생활 태도, 다름과 차이 인정하기, 휴식, 미니멀 라이프, 욕구, 우정 같은 살면서 한 번쯤 번민하기도 하고 당연하게 즐기는 여러 가치들에서 스스로 답을 찾다가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오늘 소개한 <래피의 사색>은 저자의 첫 번째 책인데, 나머지 두 책도 바쁘게 사는 인생에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여유라는 향기 가득한 음료를 제공해 주는 휴게소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저와 함께 읽어보시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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